Green Othello

All About Othello

ballzzang wrote this on 10/15/2015 10:42 in 오델로, 소설, X-square, 망아지

망아지 (2)

현서는 가을 바람이 슬렁슬렁 부는 거리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머리속에는 낮에 카이와 두던 오델로 기보가 저절로 그려졌다.

'거기서 내가 왜 엑스스퀘어를 못찔렀지. 과감하게 찔렀으면 카이형을 한방에 콱... 으이구 속상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현서는 사거리 한켠 길바닥에 장난감을 늘어놓고 팔고있는 노인에게 시선이 꽂혔다.

물건을 팔려고 늘어놓은것 같기는 한데 팔려는 생각은 그닥 없어보이는 듯 무심하게 허공만 응시하는 좀 이상한 노인이었다.

장사를 하는 중이라기보다는 그냥 앉아있기 뭣하니까 장난감 좌판을 펼쳐놓았다는 쪽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이상한 할아버지네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현서의 눈에는 노인이 앉은곳 옆에 놓여진 반짝이는 물건이 들어왔다.

'응? 저건... 바둑판보다는 작은데... 오델로판인가?'

현서는 길을 건너려다 말고 할아버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금빛으로 빛나는 물건을 쳐다보았다.

“오, 신기하게 생긴 오델로판이다!”

현서는 재미있다는 듯 금빛 오델로판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금빛으로 빛나는 도톰한 오델로판의 옆에 궁서체로 씌여진 글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동훈 七단'

“아빠!”

현서는 벌떡 일어나며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길가던 사람들이 현서를 의아하게 쳐다볼 때 허공을 바라보던 노인도 현서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이거 우리 아빠에요! 우리 아빠 오델로판 아닌가요!”

다급한 현서의 심정은 아랑곳 하지않고 노인은 너무나도 느릿느릿 그리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아빠? 너희 아빠가 누군데?”

“최동훈 7단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오델로를 제일 잘두셨던!”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큭큭대며 다시 제갈길을 가는데 그 노인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현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뜻밖의 대답에 잠시 어이없어 하던 현서는,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아빠 이름이 쓰여진 오델로판이니까 제가 가져가야죠. 저거 주세요.”

“이건 파는 물건이 아닌데?”

“뭐라구요?”

현서의 표정이 점점 흑빛으로 변해갔다. 판다고 해도 당장 살 돈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어머니에게 말을 해서 구입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파는 물건이 아니라니.

“이건 파는 물건이 아냐. 그리고 값도 무지 비싼거라고.”

“하...하지만...”

현서는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너무 어릴때 돌아가신 아버지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탓에 평소 아버지 이름만 보아도 가슴이 벅차오르던 터였다.

근데 아버지의 유품 같은 것을 우연찮게 발견했으니 현서는 도저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파세요!”

“안파는 물건이라니까.”

“파실때 까지 저 안가요”

“맘대로 하렴.”

현서는 좌판 앞에 앉아서 계속 그 오델로판에 쓰여진 아버지 이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예의 그 무심한 얼굴로 현서는 신경도 안쓴 채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몇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지고 사위가 컴컴해졌을때 노인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현서에게 마지못해 시선을 두었다.

“꼬마야. 난 가야하는데 넌 계속 여기 있든지.”

“...”

현서를 보며 알수 없는 표정을 짓던 노인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너 이거 정말 갖고 싶으냐.”

“네”

“...따라오너라.”


주섬주섬 좌판에 있던 장난감들을 챙겨 가방에 집어 넣은 노인이 걸음을 떼자 현서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 뒤를 따라나섰다.

노인이 간 곳은 현서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 건물 옥상의 작은 옥탑방이었다.

컴컴한 곳에서 불을 켜자 독거노인의 방에 어울릴법한 철지난 담요와 작은 소반, 그리고 나뒹구는 그릇 몇개가 눈에 들어왔다.

“앉아봐라.”

명령조는 아니었지만 현서는 무언가 그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는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너... 오델로를 둘 줄 아느냐?”

“... 네...”

현서는 약간 위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둬봐라. 네가 이기면 이걸 주마.”

“네?”

노인의 뜻밖의 제안에 현서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 이기면 아버지의 유품을 찾아올 수 있어. 이기면 되지. 그런데 이 할아버지 되게 잘두는것 아닐까.'

“왜. 내가 아주 잘두는 사람일까봐 겁이 나냐 꼬마. 흐흐”

“아... 아니에요. 저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거에요.”

“오. 자신감은 좋구먼. 대신 너에게 흑백을 선택할 권리를 주겠다. 뭘 할래”

현서는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흑을 쥐면 내가 원하는 오프닝으로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패리티 면에서는 불리하다. 상대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까 패리티면에서 유리한 백이 낫지 않을까.

“백을 쥐겠어요.”

“흠... 홀짝을 염두에 두고 있나. 좋다. 내가 흑이다.”

무덤덤하게 말하던 노인은 그 금빛 오델로판에 첫수를 놓고 뒤집었다.

노인의 두툼한 손마디에 걸린 흑돌이 가볍게 뒤집어졌다.

현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직각으로 응수했다. 대각은 아직까지는 아무래도 모르는 모양이 너무 많다.

노인의 3번째 착수는 대각으로 하나를 뒤집는 것이었고 현서도 하나를 흑과 대칭되게 뒤집었다.

몇 수 더 진행되면서 나온 모양은,

'이건 로즈...!'

현서는 내심 기뻤다. 다른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오지수 사범님께 맹훈련을 받은 오프닝이었던 것이다.

'아빠, 아빠의 유품은 꼭 제가 가져갈게요.'

현서가 응수를 척척하자 노인은 생각하는 시간이 차츰 길어졌다.

그러나 표정의 변화는 여전히 없었다.

중앙이 어느정도 두어졌을 무렵, 침묵하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부터 한번 해볼까.”

'이제부터 해본다고? 뭘 해본다는거야? 지금까지는 안했다는거야? 이 모양으로 날 이기긴 힘들걸'

현서는 다소 여유있는 마음으로 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노인의 손이 엑스스퀘어로 향했고 백돌 몇개가 흑돌로 변했다.

'!'

'뭐지? 여길 왜 들어갔지?'

현서는 갑자기 큰 혼란에 휩싸였다. 상대가 거기 둘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백이 패리티를 가져가는것으로 보았지만 백이 코너를 취하면 교묘하게 b열이 흑돌이 되면서 백은 변으로 진출할 수 없다.

'아뿔싸!'

현서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상대가 내가 보지 못한 곳을 두어왔을 때, 그리고 그 수가 제대로 먹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본능적으로 패배를 직감한다.

엔딩에서 상대의 실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현서는 마음이 많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엔딩에서 이기는 길을 생각하고 생각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변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된 지금, 코너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의 엑스스퀘어 한방에 무너진 것이다.

'흑...'

현서는 눈물이 핑도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할 수 없이 빈칸을 메워나갔지만 결과는 40:24 흑의 승리였다.

“이제 됐지. 게임에서 졌으니 이제 이 오델로판에는 미련을 갖지 마라.”

현서는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한번 더... 한번 더 둘 수 있을까요..”

“허어... 어린 놈이 고집이 보통 아니구먼. 또 둬도 결과는 마찬가지야. 어서 집에 가라.”

“하지만...”

현서의 눈에 구슬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티브이를 켰다.

뉴스 앵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작은 방안을 휘감았다.

가만히 앉아있던 현서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힘없이 일어섰다.

“아빠 죄송해요. 아빠 물건을 찾아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흑흑...”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현서를 물끄러미 보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꼬마야. 너는 네가 오늘 둔 수를 다 이해하고 둔거냐?”

“네에...?”

“네가 오늘 둔 수들 말이다. 네 나름대로 이해하고 둔거냐고 물었다.”

현서는 뭐라 답해야할지 몰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내 말은... 이해가 안가면서 그렇게 둬야한다고 하니까 외워서 둔거 아니냐는거지.”

“그건...”

“내가 볼때 너는 네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네가 이해하는 너만의 수를 둘 수 있도록 해봐.”

“...”

“일주일 주겠다.”

“네?”

“일주일 후 한번의 기회를 더 줄테니 그때까지 네가 내 말을 이해하고 실력을 키워서 오면 한번 더 도전을 받아주마.”

“네! 알겠어요!”

현서는 지옥에 내려온 동앗줄이라도 잡은 심정으로 크게 대답하고 건물을 뛰어내려갔다.

조용해진 옥탑방안에서 뉴스를 보던 노인이 쓸쓸해진 표정으로 갑자기 TV를 껐다.

밥상위에 있던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던 노인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지 애비랑 어찌 저리 닮았는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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