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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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12/12/2015 20:47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세 가지 스승

세 가지 스승 (1)

노오란 은행잎이 거리를 양탄자처럼 깔아놓고 있던 늦가을 카이는 한빛오델로학원이 있는 건물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가고 있었다.

“헉헉... 좀 늦었네 이거. 갑작스런 호출이라니 뭔 일이라도 생긴건지...”

겨울이 오기전의 낙엽 내음을 몸에 덕지덕지 붙인 채 카이는 다다다 계단을 뛰어올라 2층의 학원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니 뭐야 갑작스럽게 빨리 오라면 내가 어떻...”

그때 카이의 눈에는 지수와 현서 앞에 오델로판을 놓고 마주 하고 있는 민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느때와는 다른 묘한 분위기에 카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빨리 오라고. 형때문에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잖아.”

현서가 카이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야 나도 개인 일정이 있는 사람이지 오란다고 빨리 올 수 있나. 그런데 이거 무슨 분위기?”

“... 전국대회 전 마지막 모의고사.”

침묵하고 있던 지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모의고사?”

카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현서 옆자리에 슬그머니 앉았다.

“전국대회가 2주 앞으로 다가왔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세계대회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야. 맞지?”

민혁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세 사람은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대회는 전국대회 상위권자 3명 플러스 여자1명이 자격을 얻을 수 있어. 벌써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인원은 다 차버리는거지.”

잠시 침묵이 학원을 맴돌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실력이 뛰어나니까 상위권 입상이 가능할 수 있지. 하지만 정말 지금 상태로 장담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고수들이 있는데.”

“그럼... 지금 실력으로는 힘들다는...?”

실망어린 표정의 현서가 되물었다.

민혁이 현서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어보이며 말했다.

“꼭 그런건 아니야. 하지만 남은 2주간 너희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힘들지도 몰라.”

“흐음... 그래서 유사범님과 최종 모의고사 같은 대국을 두고나서 약점을 보완하는 클리닉을 열겠다는?”

카이가 뭔가 알겠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좋아 둬보자고! 나도 유사범님한테 예전처럼 쉽게 당하지만은 않을테니. 이거 재밌겠는걸 흐흐흐...”

카이가 손가락뼈를 우두둑 꺾으며 말했다.

“풉. 무슨 패싸움 나가? 손가락은 왜 꺾어.”

“유사범님과 1:1로 붙는것은 싸움을 넘어서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하니까 그런다 꼬마.”

그때 민혁이 입을 열었다.

“아니 1:1로 두지 않을거야.”

“뭐?”

세 사람은 동시에 놀라서 민혁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지수도 적잖이 놀란 듯 민혁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나를 상대로 지수, 현서, 카이가 순서대로 한수씩 두어나가는거야. 세명이 뭉쳐서 나를 꺾는게 목표지.”

“그래도 1:3이면 3명쪽이 유리한거 아닐까나...”

현서의 혼잣말에 민혁은 아무말 없이 웃어보였다.

“좋아! 둬보자고. 이런 대국은 처음이지만 재밌겠네. 어이 오사범하고 꼬마 잘해라잉. 내 발목 잡지 말고. 큭큭”

“흥. 그쪽이나 내 발목 잡지 마시지.”

지수가 카이를 째려보며 말했다.

“자 그러면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하고 첫수는 큰 의미 없으니 내가 흑으로 먼저 두지.”

민혁은 가벼운 손놀림으로 첫수를 놓고 뒤집었다.

지수가 백돌로 손을 가져갔다.

“이봐이봐 대각으로 두라고. 스네이크로 한번 찐하게 붙어볼테니까.”

그러나 지수는 카이의 말은 들은채도 안하고 직각으로 두었다.

“아~~ 왜 직각으로 뒤집은거야.”

“거 되게 시끄럽네. 난 로즈가 좋아서 그런다 왜.”

카이의 볼멘 소리에 지수가 대꾸했다.

민혁은 다시 백의 가운데를 관통했다.

현서가 당연하다는 듯 흑의 가운데 돌을 뒤집자 민혁은 그 대각쪽으로 두어서 홀스 진행으로 나아갔다.

“어 홀스다. 카이형 다음 어딘지 알지?”

카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흑을 관통하면서 홀스 오프닝을 비껴갔다.

이번에는 현서가 볼멘소리로 소리쳤다.

“아 왜 거기다 두는거야. 저번에 나랑 이 오프닝 뒀잖아!”

“시끄러. 그때 너랑 둬서 졌던 오프닝이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아.”

“이렇게 되면 세명 다 모르는 길로 가는건가. 재밌게 됐네.”

아무말 않던 민혁이 입을 열었다.

세명 모두 자신들의 장기인 오프닝을 벗어나자 말 수가 없어지면서 한수 한수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수가 한수를 공들여 놓으면 현서는 왜라는 표정을 지었고 현서가 한 수를 놓으면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윽고 흑과 백의 대립형으로 오델로 판의 2/3 정도가 채워졌을 무렵 카이의 차례가 되었다.

카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백돌을 집어 돌연 우하쪽의 엑스스퀘어를 찔러나갔다.

민혁이 카이의 수를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을 때 다음 차례인 지수가 소리쳤다.

“뭐야 이 난데없는 엑스는!”

“아아 그게 최선수야 여기서. 딱 보면 모르나?”

“그래도 둘 데가 이렇게 많은데 대각 잘리는거는 보고 둔거야?”

“대각이 잘리기야 잘리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혁은 교묘하게 씨스퀘어쪽을 두어수 두면서 백돌의 대각을 자르고 나왔다.

“이봐 이봐. 저렇다니까. 또 내차례네 이거.”

지수가 표정이 일그러지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진건 아니잖아. 판을 잘 보라고.”

카이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내뱉었다.

지수는 한동안 판을 내려다보더니 흑돌의 가운데를 파고 들었다.

그 때 카이가 또 한번 소리질렀다.

“으악! 반대쪽 엑스를 찔러가야지 뭐하는거야. 큰일났네.”

“오델로는 33개만 남겨도 이기는 게임이니까. 안전한 길로 가야지. 몇 칸 안남았으니 잘 둬라 현서.”

현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반상을 응시했다.

'패리티는 백이 유리해. 먼저 우상쪽을 들어가면 홀수칸이니까 백이 이기지 않을까...'

현서는 우상쪽의 3칸 중 빈곳을 먼저 두었다.

그 때 지수와 카이는 동시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악!”

“왜? 왜? 패리티잖아 뭐가 잘못됐어?”

현서가 놀라서 묻자 지수와 카이는 민혁이 두는 곳을 가르키며 말했다.

“같은 패리티면 저기를 먼저 둬야 흑돌을 몇개 더 뒤집을 수 있지.”

“이제 끝났어...”

카이의 수순부터는 이미 승부가 난 다음이었다.

마지막칸을 메우고 계산해 본 결과 35:29으로 흑의 승리였다.

격렬했던 전투가 끝난 직후 학원은 네 사람의 열기로 후끈했다.

잠시 물 한모금을 마시던 민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뒀어. 그래도 고수 세명이 붙으니 쉽게 무너지지는 않네.”

세명은 저마다 다른 곳을 응시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사실 카이가 엑스를 찔러왔을때 자체로 나쁜 수는 아니었지만 지수 말대로 다른 더 좋은 곳이 있었어.”

지수가 그거보라는 듯이 카이를 째려보았다.

카이가 머쓱한 표정을 지을 때 민혁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 이후라면 카이 말대로 반대쪽 엑스를 찌르는게 최선이었지.”

이번에는 카이가 지수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차선이나 차차선으로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이잖아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반대쪽 엑스를 찔러갔다면 길이 어렵지 않아서 현서가 엔딩에서 실수를 안했을거야 아마...”

지수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현서...”

“네.”

현서는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들어 민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는 마지막에 필히 돌세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예? 돌세기요?”

“그래. 사범님이 볼 때 네가 예전부터 근소한 차이로 지는 판을 여러번 봤는데 상당수는 네가 이길 수 있던 판이었다.”

“그렇다면...”

“그렇지 남은 2주간 마지막에 계산서를 뽑아내는 훈련이 필요할 것 같구나.”

“...”

“카이.”

“넵.”

“너는 옛날부터 너무 기풍이 공격적이야. 상황에 따라서는 유연한 반면 운영이 필요하지. 그걸 훈련할 필요가 있어.”

“음...”

“오사범.”

“네”

“자기는 반대로 너무 수비형이야. 끝낼 수 있을때 못 끝내고 시간 끌면 거꾸로 지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고.”

“...”

세 사람은 선생님으로부터 낮은 등수의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민혁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세가지 스승을 줄게. 오늘 밤 문자로 너희들의 약점을 보완해줄 스승들을 각자 소개해줄거야.

남은 2주간 그 스승들과 잘 훈련해서 전국대회에서 만나자고.”

빙긋이 웃으며 얘기하는 민혁을 보며 카이가 말했다.

“오오 각자에게 맞춤형 스승을 소개시켜주는건가. 역시 유사범님은 대단해. 크크”

“그럼 유사범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지수에게 민혁이 대답했다.

“아 나는 나대로 2주간 할 일이 있어. 그러니까 각자 잘 수련해서 2주 후에 보자고.”

“네...”

지수, 현서, 카이 세사람은 갑작스런 민혁의 제안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새로운 스승을 만난다는 긴장감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어느덧 늦가을의 오후가 도시 전체에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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