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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1/17/2016 20:33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세 가지 스승

세 가지 스승 (3)

빨갛고 노란 단풍이 온 산을 휘감고 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산바람 속에는 신기하게도 바다내음이 배어 있었다.

아마도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산을 타고 넘어오는 듯 했다.

지수는 울긋불긋한 단풍속으로 난 좁다란 길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고 있었다.

등산복을 입고 있었지만 평소 등산을 즐겨하지는 않았던 터라 옷차림부터 산행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힘이 부친 지수는 잠시 바위에 걸터 앉아 생수를 한모금 들이마셨다.

“후아... 보기 보다 꽤 높은걸. 대관절 이런 곳에 오델로 고수가 살고 있다는건가...”

주위를 둘러보던 지수는 그 가을산의 절경에 감탄하면서도 내심 스승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수미산 경덕사 무아 스님'

지수는 몇일전 민혁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다시 켜보았다.

“어떻게 꼴랑 이 한줄만 남기고... 유사범님도 너무해. 전화기도 꺼져있고 말야.”

스승을 소개해준다고 기대를 한껏 했더니만 생전 가본적도 없는 산 속에 있는 절을 찾아가야 하다니.

“오델로 고수인 스님이 있다는건가...”

지수는 솔직히 오델로를 잘 두는 스님의 모습이 아무리해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만 바둑을 잘 두는 스님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오델로를 잘 두는 스님이라니.

한복을 입은 외국인 처럼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와 현서는 스승들 잘 만나서 잘 배우고 있나...”

지수는 카이의 공격적인 기풍과 현서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발상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상대의 숨통을 꺾어야 할 순간에 물러서다가 실패를 경험할 때나, 고정관념에 의해 승리를 놓쳤을 때는 특히 그러했다.

그 둘은 지수의 좋은 스승이자 라이벌이자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어찌보면 참가하는 선수중의 일부이다. 더 센 상대가 나오면 그 상대를 넘어야 한다.

이번에 만나게 될 스승에게 제대로 배워서 또 다른 상대들이 나타나도 무난히 넘어설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잘 되겠지 하며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드디어 절의 소박한 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다 왔나보다! 에구 힘들어...”

지수는 어쨌거나 목적지까지 잘 왔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절 앞에는 승복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비질을 하며 계단에 쌓인 낙엽을 좌우로 치우고 있었다.

지수는 합장을 하며 그 스님 앞으로 다가갔다.

“스님. 혹시 이 절에 무아 스님이라고 계시는지요.”

비질을 하던 스님은 비질을 잠시 멈추고 지수를 쳐다보았다.

“무아 스님이라고요?”

“네.”

생글생글 웃음을 지어보이는 지수를 보며 그 스님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절에는 처음 오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만...”

“허허... 이것 참...”

난처한 표정을 짓는 스님을 보며 지수는 뭔가 기분이 꺼림칙했다. 뭐가 잘못된건가.

“왜...그러시죠?”

“무아 스님께서는 2년 전에 열반에 드셨습니다만...”

“네?! 돌아가셨다구요?”

지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먼곳까지 고생고생하면서 찾아왔건만 소개 받은 스승이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니.

민혁이 잘못 소개시켜준건가. 지수는 떨리는 손놀림으로 민혁에게 휴대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여전히 꺼져있을 뿐이었다.

“아악! 유사범님 너무해. 이게 뭐람.”

망연자실해진 지수는 바닥에 철퍽 주저 앉고 말았다.

“아... 혹시 지수님이신가요?”

“네? 제 이름을 어떻게...”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 스님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마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수라는 이름의 여자분이 오시면 몇일 묵게 해드려달라고.”

'뭐야. 그건 유사범님일텐데. 일부러 돌아가신 분을 스승이라고 말한건가. 뭐가 뭔지...'

“이쪽으로 오시지요.”

지수는 하는 수 없이 그 스님을 따라갔다. 곧 어두워질터라 이대로 하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 들어가셔서 옷을 갈아 입고 나오시죠. 좀 이따 저녁 공양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 참 제 법명은 우담입니다. 그럼...”

잠시후 지수가 승복 같은 옷을 입고 나와 절 경내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작은 절은 아니었다.

곳곳에 템플스테이를 하는 신도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템플스테이를 하란 뜻이었나... 하지만 좀 너무한걸.'

지수는 아직 분이 덜 풀렸지만 고요한 산사에 앉아 있다보니 마음은 평온해지는 듯 했다.

법당에서 나물과 김치만으로 하는 저녁 공양은 무언가 엄숙한 느낌이었다.

먹고 난 음식물은 절대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규율에 따라 밥그릇에 물을 부어 손으로 휘휘 저어 다 마셔야했다.

공양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해는 져서 어두워졌다. 산바람을 타고 풍경소리가 땡땡 울렸다.

'맞아! 난 오델로를 배우러 온거잖아...!'

지수는 지나가는 우담 스님을 붙잡고 물었다.

“스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무아 스님께서는 생전에 오델로를 잘 두셨나요?”

“네? 뭐요?”

“오델로요.”

“그게 뭡니까?”

“네? 오델로 모르세요? 대충 바둑 같은건데... 뭐냐면...”

“글쎄요, 무아 스님께서는 바둑도 안두셨는데요..."

지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왜 온거야 그러면.

“그러면 스님도 오델로라는 게임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네 저는 처음 듣습니다만...”

우담 스님이 자리를 뜨고 지수는 하릴 없이 처마 한켠에 앉아 산사에 뜬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산사에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소리, 저 멀리 들리는 어느 스님의 독경 소리가 제법 운치를 주고 있었지만 지수는 무언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것 같다는 생각에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어쩌나... 카이와 현서는 열심히 훈련중일텐데. 대회 임박해서 이래도 되는걸까.”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지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소로 들어갔다.

내일 새벽 예불에 참여하려면 잠이라도 일찍 자야지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컴컴한 산 골짜기에서 끼루룩하는 산새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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