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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1/31/2016 13:38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세 가지 스승

세 가지 스승 (4)

거리엔 훅 하며 부는 가을바람에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현서는 1시간전부터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돌고 있었다.

걷다가 잠시 멈춰선 현서는 몇일전 민혁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다시 켜보았다.

'천하 바둑도장 이의진'

현서는 처음 메시지를 받았을 때 민혁이 문자를 잘못보낸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오델로도 아니고 바둑도장을 찾아가라니. 바둑을 배우라는 말인가?

당황한 현서는 민혁에게 전화도 해보았지만 민혁의 휴대폰은 그 이후로 주욱 꺼져 있었다.

“돌세기를 연습해야 한다더니 뜬금없이 웬 바둑? 바둑 두는 사람중에 오델로 고수가 있나봐.”

현서는 혼잣말을 하면서 아파트 단지 상가에 걸려있는 천하 바둑도장이라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들어가보자. 유사범님이 허튼 일을 꾸밀리가 없어. 카이형이나 지수사범님은 지금쯤 맹훈련중일텐데.”

현서는 괜히 멋적은 마음에 2층 바둑도장 문앞을 기웃거렸다. 안에는 무슨 강좌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서가 머뭇머뭇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한 여성이 걸어 나왔다.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는 바람에 현서는 그만 이마를 문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얏!”

“어머! 앞에 사람이 있었네. 괜찮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얼른 들어오지 않...”

잠시 현서의 얼굴을 보던 여자는 말을 끊고 찬찬히 현서를 바라보았다.

“넌... 우리 원생이 아닌데. 누구지? 바둑을 배우러 왔니?”

“아뇨. 누구를 찾아 왔는데요.”

“그래? 누구를?”

“이의진님이요.”

여자는 처음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깔깔깔 웃어버렸다.

“이의진님이라니. 호호호 재밌는 꼬마로구나. 이리와라. 의진이는 저기 구석에 앉아있네.”

여자가 가르키는 쪽에는 현서 나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 어린이 하나가 기보책을 보며 바둑판에 돌을 놓아보고 있었다.

체구는 왜소한 편이었지만 돗수 높은 안경를 쓰고 진지하게 돌을 놓는 모습에서 어떤 의젓함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선생님인가 했더니 내 또래였잖아. 저런 애가 오델로 고수라고?'

현서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바둑 강의를 듣고 있는 아이들을 뚫고 의진이라는 남자 아이쪽으로 다가갔다.

“의진이에게도 친구가 있었나... 얼마전 의진이 친구가 찾아오면 들여보내주라는 전화가 오긴 했지만...”

문 앞에 서있던 여자는 신기하다는 듯 혼잣말을 하며 화장실로 걸어갔다.

“아... 안녕?”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바둑돌을 놓아보고 있던 아이는 현서가 다가오는것도 눈치 못채는 듯 했다.

'뭐야 이 녀석. 옆에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있잖아.'

현서는 조금 전보다 목소리를 더 키웠다.

“안녕! 네가 의진이니? 난 현서라고 해. 최현서.”

하지만 남자아이는 여전히 현서가 아닌 바둑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일그러진 채 손가락을 계속 까딱까딱하면서.

사람을 무시하는건가 하고 느낀 현서는 갑자기 성질이 났다.

“야!”

순간 바둑교실이 조용해졌다. 학원 안에 있던 바둑 선생님과 원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서쪽으로 쏠렸다.

“거기... 친구를 만나러 왔으면 조용히 해야지.”

자석 바둑판을 놓고 강의를 하고 있던 바둑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순간 당황함을 느낀 현서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 예... 죄송...”

의진이라는 아이도 그제서야 얼굴을 들어 현서를 바라보았다.

현서는 자신을 창피하게 만든 의진이 괘씸해서 목소리를 낮춘 채 따져 물었다.

“네가 의진이냐?”

“그... 그런데. 넌 누구야?”

“사람이 왔으면 아는척을 해야할거 아냐. 오델로 고수라고 무시하냐 지금?”

“뭐...? 무슨 고수?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응...? 너 오델로 몰라?”

“그게 뭔데? 난 바둑밖에 몰라.”

현서는 당황했다. 분명히 천하바둑교실 이의진이라고 했는데.

“너 말고 그럼 이의진이라고 또 있어?”

“아니 여기 의진이는 나밖에 없어. 넌 누구야 근데.”

“후...”

현서는 맥이 풀려서 의진의 옆 빈 의자에 주저 앉고 말았다.

'아니 유사범님 뭐야 진짜...'

의진은 힘빠진 모습으로 앉아있는 현서를 쳐다보았지만 우물쭈물하며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그런 의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서가 말했다.

“여긴 큰 소리로 얘기할 수도 없고 시끄러우니까 일단 나가서 떡볶이나 먹자. 힘이 빠져서 그런가 배가 고프네.”

“... 나 돈 없는데.”

“나한테 있어.”

현서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천원짜리를 내보이며 말했다.

상가 1층에 있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씹으며 두 어린이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의진은 매우 숫기가 없어보였다. 이따금 안경을 치켜올릴뿐 떡볶이도 별로 입에 대지 않았다.

“맛이 없냐.”

“아니. 별로 배가 안고파서...”

'이 녀석 진짜 웃기지도 않는 녀석이네. 하나도 재미없네.'

현서는 할 수 없이 자기라도 말을 많이 해야겠다고 느꼈다.

“바둑은 어떻게 두는거야?”

“음... 상대보다 집이 많으면 이기는 게임인데 배우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난 바둑은 못두지만 오델로를 두지.”

“오델로가... 뭔데?”

“흑돌 백돌이 가로 세로 대각으로 상대를 둘러싸면 내 색깔로 뒤집는 게임이야. 리버시라고도 불리우고.”

“본 것 같기도 한데...”

“아, 아까 너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두더라. 그거 왜 그런거야?”

“아... 그건 계가를 하는 나만의 방식이야.”

“계가?”

“응. 집 세는 거. 바둑은 집 많은 사람이 이기는 거잖아.”

“흐음... 너 계산을 잘하나보다?”

“계산은... 자신있지.”

“그래? 난 계산을 못하는데. 실은 그것때문에 고민이야. 계산을 못해서 오델로를 자주 져. 계산 잘 하는 법좀 배우고 싶다.”

“그렇구나. 근데 난... 바둑 이제 그만둘까 해.”

“뭐? 왜?”

침울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의진을 현서는 다시 한번 빤히 쳐다보았다.

“실력이 더 이상 늘지도 않는것 같고, 맨날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것도 싫고, 지는 것도 싫고, 장사를 하며 학원비를 대는 아빠한테도 미안하고... 프로기사의 꿈은 역시 포기하는게...”

아무말 않던 현서가 갑자기 주먹을 쥐고 의진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아얏! 왜때려!”

현서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너 아까부터 보니깐 말야. 사내자식이 꼭 계집애 같아가지고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도 못하고, 자신감도 없고, 집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계산이 자신있다면서 왜 포기하려는거야!”

의진은 놀란 눈으로 아무 말도 못한 채 현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말로 부모님께 미안하다면 네가 더 열심히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하는 것 아니냔말야! 난... 오델로를 잘 둬서 기쁘게 해드릴 아빠도 안계시다고!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넌 몰라!”

감정에 복받친 현서는 벌떡 일어나서 분식집을 나가버렸다.

밖으로 나가는 현서를 놀라서 쳐다보던 의진이 이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집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계산에 자신 있는 사람이 포기하는 것도 이상할 수 있겠군.'

의진이 분식집을 나오니 저만치 거리에 현서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어가고 있었다.

“야! 최현서!”

현서가 물끄러미 뒤를 돌아보았다.

“같이가자! 내가 나만의 계산 비법을 알려줄게.”

아파트 단지 가로수 거리의 두 어린이 머리 위로 슬그머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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