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All About Othello

ballzzang wrote this on 06/26/2015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서막

서막 (1)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어느 봄날 한 사내가 사뿐사뿐 걷고 있다. 중키 정도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그 남자는 앳된 모습에 웃는 인상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드리워진,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잠깐 멈춰서더니 한산한 거리의 가로수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이제 곧 여름이 올텐가...’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때,

“아얏!”

뒤를 돌아본 남자의 눈 앞에는 한 여자가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헉. 뭐... 뭐야 이 아가씨는.”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그녀는 또렷한 이목구비가 예쁘장했지만 무언가 분함을 못이기는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문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신이지. 이 건물 주인의 부하가.”

“엥? 뭐라고? 부하? 무슨 말이지. 난 그저...”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낯선 얼굴인데 이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을 보면 당신이 건물 주인의 졸개나 그런게 틀림 없어”

어리둥절한 남자가 옆을 바라보니 허름한 상가 건물이 있었고 그 2층에는 조그마하게 이런 간판이 걸려있었다.

‘오델로-어린이 두뇌개발. 원생 수시 모집’

간판을 본 남자는 잠깐 뜻밖의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오델로라...”

“지금 뭐라고 중얼대는거야 이 아저씨는!”

“에? 아니 그게 아니라... 아가씨가 저 학원 운영하는 사람이야?”

“그렇지. 알면서 왜 물어? 악덕 건물 주인이 보내서 온 사람 아니야?”

“이보라구. 난 그냥 떠돌이일뿐이야. 이 동네는 처음 오는 사람이라고..”

남자의 눈을 본 여자는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그렇다면 죄송...”

당황해하는 여자의 사과를 미처 받기도 전에 저쪽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이, 여선생. 오늘이야. 준비는 됐겠지?”

그들의 뒤에는 조그만 체구의 노인 한명과 몸집이 커다란 한 남자가 헐렁한 양복을 입은채 서있었다. 행색으로 보아 여자가 말한 건물주는 저 노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다른 남자는 뭘 하는 사람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여자의 옆에 서있던 남자의 눈빛이 잠시 날카로워졌다.

“준비는 됐어요. 올라갈까요?”

“켈켈. 그러자구.”

노인과 거구의 남자가 2층으로 올라가고 여자가 따라 올라가기 전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좀 전의 일은 실례했습니다. 저는 그럼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긴장한 표정의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한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저기... 목이 타서 그러는데 물좀 마시고 갈 수 있을까요?”

“예?... 아 그럼 2층에 정수기 물이 있으니까...”

남자가 2층에 들어서니 오델로 학원은 기원도 겸하고 있는 듯 바둑판들이 놓여있었으나 사람은 아까 그 두 남자와 여자 한명밖에 없었다.

그들은 바둑판 위에 오델로 판을 놓고 마주 앉아 있었고 조그마한 노인이 그 옆에 서서 비죽거리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전에 약속했던대로 오델로인지 오뎅으로인지 내가 고수 한명을 불러왔으니 깨끗하게 지는쪽이 물러나는 걸로 하자구. 오케이?”

“알겠어요.”

“킬킬킬”

거구의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이 아가씨,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그 전설의 오델로 고수 유민혁 9단이라고.”

“이 할아버지에게 얘긴 들었어. 그나저나 당신도 한심하군. 전설의 고수라는 양반이 노인네 졸개노릇이나 하고”

“킬킬킬. 지고나서 학원 뺄 궁리나 해”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마시던 남자는 잠시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그들의 오델로 대국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10여분쯤 후 흑돌과 백돌이 판에 어느정도 찰 때쯤 상대 돌을 뒤집는 거구 남자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손이 움직일때마다 그의 헐렁한 양복 상의도 함께 춤췄다. 하지만 여자는 굳어진 표정으로 반상을 응시할 뿐 좀처럼 착수를 못하고 있었다.

“이것봐 좀 어렵지 않겠어. 이제 몇 곳만 두면 끝나는데 말이야.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킬킬”

“크...”

빈칸이 다 메워지고 서로의 돌을 세어보니 흑을 쥔 여자의 돌이 30개, 백을 쥔 거구 남자의 돌이 34개였다.

“히히히히. 선생. 우리가 이겼으니 이제 학원은 빼주셔야겠어.”

얼굴이 상기된 여자는 아무말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내일 계약서 들고 찾아올테니 그때 까지 짐정리 해놓고 있으라고 히히히”

물을 마시던 남자는 노인과 거구의 남자가 학원을 빠져나갈 때까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여자가 눈을 뜨고 일어서다가 남자를 보며 흠칫 놀랐다.

“어머! 아직 안가셨어요?”

“아..그게 제가 나가는 게 도리어 방해가 될까봐 끝날때까지 조용히 있는게 낫겠다 싶어서...”

“후... 이제 됐으니 가주세요”

“저... 아까 그 사람들은 누군가요?”

여자의 어두운 표정이 마음이 쓰인 남자가 물었다.

“아... 여기 건물 주인과 오델로 고수인데 이 학원 빼고 영어학원 들이고 싶다고... 싫다고 했더니 오델로로 내기를 하자는 거에요”

“아버지 때부터 운영하던 곳이어서 지켜내고 싶었지만 승부에 졌으니 할 수 없죠 뭐”

남자는 더 이상 얘기를 하는것도 실례겠다 싶어 가볍게 목례를 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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