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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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5/22/2016 11:54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세 가지 스승

세 가지 스승 (5)

대마도의 아침해가 동쪽 산머리 위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 무렵 카이는 낚싯바늘과 낚싯줄을 손에 쥔채 아무렇게나 다다미 바닥에 누워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박사장은 카이의 방문을 열고 깨우려던 찰나 방 한켠에 놓여진 100개의 낚싯바늘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저마다의 낚싯바늘에는 낚싯줄이 가지런히 매여져 있었다.

'아니 정말로 100개를 다 묶었단 말인가? 몇십개만 묶고 그만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이 친구 근성이 대단한걸.'

옅은 미소를 짓던 박사장은 잠자는 카이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카이씨. 일어나셔야죠! 얼른 아침먹고 낚시하러 나가야 합니다. 배울게 아직 많습니다.”

“으...음...”

핏발이 벌겋게 선 눈을 비비며 일어난 카이는 정신이 몽롱한채로 겨우 아침밥을 들고는 박사장 뒤를 엉거주춤 따라 나섰다.

인근 방파제에 낚싯대를 쥐고 선 박사장은 밑밥을 바다 위로 툭툭 던진 후 카이를 보며 말했다.

“자 카이씨 이제부터 제가 하는 걸 잘 보세요.”

박사장이 쉬익 낚싯대를 던지자 찌가 하늘 높이 날아가더니 저 멀리 바다 위로 퐁하고 떨어졌다.

“저 찌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카이는 아직 졸린 눈을 어쩌지 못하고 게슴츠레 박사장이 하는 행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후 정적을 깨고 박사장이 소리쳤다.

“카이씨 지금 찌가 바다속으로 들어간것이 보이지요? 저건 지금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는 뜻입니다!”

“오?! 그럼 빨리 잡아채야죠!”

카이도 신기한듯 소리쳤다.

“아닙니다 카이씨. 이때 잡아채면 고기를 낚지 못합니다. 다시 찌가 수면쪽으로 올라올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에?”

“고기는 미끼를 한번에 덥썩 물지 않습니다. 처음엔 미끼를 살짝 건드려보다가 슬그머니 물어도 봤다가 괜찮다 싶을때 삼키거든요. 그때가 찌가 가라 앉았다가 다시 올라오는 순간입니다.”

“아... 완전히 삼켰을때 바늘이 걸리니까 그때 잡아채라는거군요. 아 찌가 다시 올라와요!”

박사장은 낚싯대를 휙 잡아 채더니 줄을 감기 시작했다. 카이는 이제 고기가 올라오겠거니 했지만 박사장은 다시 감았던 줄을 푸는 것이 아닌가.

“어... 왜 줄을 계속 당기지 않으세요?”

“바늘은 걸린 상태지만 줄을 계속 당겨버리면 고기도 강하게 저항을 하기 때문에 줄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적당히 감았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하면서 물고기의 힘을 소진시키는 것이죠. 그리고 고기의 힘이 빠졌을때쯤에... 옳지 이제 됐다.”

박사장이 줄을 감아올리자 어린 아이 팔뚝만한 벵에돔 한마리가 낚싯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오 꽤 큰데요! 역시 힘이 센것 같더라니...!”

“하지만 고기는 힘으로 잡아올리는 것이 아니죠. 자 이제 연습좀 하고 이따가 점심 먹고 실습하러 갑시다.”

“네? 어딜가나요?”

“제대로 낚시 해야죠. 통통배를 타고 만(灣) 깊숙히 들어갈겁니다.”

카이는 연습을 마친 후 싫다 좋다 할 수도 없이 될대로 되라하며 점심을 먹고 박사장을 따라 낚싯대를 들고 배에 올랐다. 오델로와는 관련없는 일들이지만 나름 재미 있을 것 같기는 했다.

통통거리며 배가 움직이자 호수처럼 산들에 둘러싸인 대마도 만의 가을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인적없는 고요한 곳의 평화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바다를 바라보던 박사장이 입을 열었다.

“카이씨...”

“네?”

“낚시는 말입니다... 인류의 수렵 본능을 가지고 하는 행위거든요. 수만년전 인류의 조상들도 낚시를 했을테니까요.”

“그... 그렇겠죠 하하.”

“그런데 말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잡어들조차 자기 생명을 걸고 저항을 하기때문에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걸 아셔야 합니다.”

“ ...?”

“지금은 잘 이해가 안갈지 모르지만 하다보면 이해가 갈겁니다.”

이윽고 배가 만 어귀의 한 섬에 다다랐다. 카이가 낚싯대와 약간의 장비를 가지고 훌쩍 뛰어내렸다.

“아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네요. 사장님은 이곳에서 자주...어?!”

뒤를 돌아본 카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박사장이 배에서 내리지 않고 뱃머리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장님! 뭐에요! 어디 가시는거에요!”

박사장은 카이에게 손을 흔들며 얘기했다.

“이곳에서 카이씨 혼자 고기를 낚는 겁니다. 나는 4시간쯤 후에 다시 돌아올겁니다. 그럼 고기 많이 낚으세요! 행운을 빕니다!”

멀어져가는 통통배와 박사장을 보면서 섬에 홀로 남겨진 카이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 이게 뭐람. 정말이지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냔 말이지...”

바닥에 놓여진 낚싯대와 바다를 번갈아보던 카이는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참으로 난감했지만 10여분을 그러고 앉아있다보니 한적하고 평온한 고요함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것도 사실이었다.

“좋아 이리된거 한번 해보지 뭐.”

배운대로 미끼를 바늘에 끼우고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워보았다. 초보라 낚싯대가 멀리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고기가 많은 지점이니 그럭저럭 낚시가 가능할 것 같았다.

카이는 찌가 바다속으로 들어가는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찌는 요지부동이었다.

“고기야 물어라. 물어라.”

십분 이상을 그러고 지켜보고 있자니 눈도 점점 가물가물해지면서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나니까 슬슬 부아도 났다.

“아니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진짜!”

꿈쩍도 않는 찌를 보며 혼자 씩씩대봤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다. 팔다리에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는 것도 고통이구나를 느끼던 바로 그 때,

“어?!”

찌가 슬그머니 물 밑으로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아싸아! 드디어 물었구나!”

카이는 찌가 다시 올라오기를 기다려보았지만 내려간 찌는 다시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가 고기가 미끼만 먹고 달아나버리면 어쩌나 하던 카이는 본능적으로 낚싯대를 잡아챘다.

“오, 제법 힘이 센데!”

카이는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릴을 열심히 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온건 빈 낚싯줄뿐이었다.

“어? 뭐야 줄을 끊고 튄거야?!”

카이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하는 수 없이 다시 낚싯바늘을 묶어야 했다.

미끼를 끼우고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가만히 서서 찌가 움직일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너무 힘이 들었다.

그나마도 고기가 미끼를 문것 같으면 성급히 잡아당겨서인지 번번이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기를 무려 3시간. 카이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이 묶어야 하니 간밤에 낚싯바늘 묶기 연습 시키신 이유는 알겠는데... 이런 젠장 그래도 그렇지 생전 처음 낚시하는 사람 혼자 남겨두고 이거 뭐 어쩌란 거야! 아유 죽겠네 정말...”

카이는 못참겠다는 듯 낚싯대를 바닥에 집어던진채 벌러덩 드러누웠다.

파란 하늘에 까마귀 한마리가 까악하면서 푸드덕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살랑살랑 가을 바람에 낙엽들도 폴폴 날리고 있었다.

쥐죽은 듯 고요한 적막이 사방을 휘감고 있다는 것을 느낀 카이는 불현듯 자신도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옛날 인류의 조상들은 수렵활동 하면서 살려면 참 힘들었겠어... 물고기 따위 한마리 낚는게 이리 힘이드니 원...”

누워서 혼잣말을 내뱉던 카이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찮아 보이는 잡어들조차 자기 생명을 걸고 저항을 하기때문에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걸 아셔야 합니다.'

“....!”

카이는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빙긋이 혼자 웃어보였다.

“그랬군... 그런 이유였어...”

카이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정성스레 미끼를 바늘에 끼우고는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웠다.

그리고는 집중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찌를 노려보았다. 집중을 하다보니 좀이 쑤시는지 어떤지도 느낄 수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윽고 찌가 수면아래로 내려 앉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카이는 꿈쩍않고 가라앉아 흐릿해져 보이는 찌를 그냥 쳐다보고 있다가 얼마 후 찌가 올라왔을 때 낚싯대를 잡아챘다.

묵직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그 느낌만으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꽤 큰 놈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으윽...!”

엄청난 힘 때문에 카이의 몸이 바다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이거 잘못하다간 큰일나겠는걸... 괴...굉장하다!'

카이는 있는 힘을 다해 온몸으로 버티면서 릴을 감아올렸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며 줄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재차 감아올리고 풀고 감아올리고 풀고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십여분. 줄을 잡아당기던 고기의 힘이 조금씩 약해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아...'

드디어 고기의 힘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 그 때, 카이는 최대한 집중력을 유지한 채로 릴을 힘껏 감아올렸다.

기나긴 밀고 당기기 끝에 카이의 낚싯대 끝에는 5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은빛 물고기가 햇빛을 머금은채 수면위로 딸려 나오고 있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해진 카이는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그 물고기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카이씨! 오오! 월척인가요!”

어느새 박사장의 통통배가 뭍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카이는 씨익 웃으며 박사장을 향해 엄지를 들어보였다.

“오오 이것은 감성돔이 아닙니까!”

“귀한 물고기인가요?”

“아 물론이죠. 감성돔 고급 어종이죠. 낚기도 쉽지 않은 것이고. 더욱이 이 정도 크기는 값으로만 쳐도...정말 대단...”

카이는 박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고기 입에서 바늘을 뽑더니 다시 휙 바다로 집어던졌다.

“아...?”

바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카이가 입을 열었다.

“저 친구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저와 승부를 했습니다. 비록 하찮은 물고기라고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저항한 저 친구를 저는 존중합니다. 그런 가르침을 준 친구를 잡아갈 수는 없네요.”

카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사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카이씨,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네요.”

“글쎄요, 어떤 승부에서 이기려면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실력도 발휘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그렇죠. 상대를 힘으로만 제압하려는 자세에는 은연중 상대를 가벼이 여기고 있는 마음이 들어있을 겁니다.”

천천히 배에 올라선 두 사람은 물살이 갈라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저런 물고기 한마리도 사력을 다해서 저항하는데, 세상에 하수라고 만만히 볼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더라구요...”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그 점이 카이씨가 오늘 월척을 낚게 된 이유이기도 했겠죠.”

“결국 유연함이라는 것도 겸손함에서 나오는 것이고, 승부에서의 겸손함이란 아무리 하수라 하더라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사자가 토끼 한마리를 잡을때도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이유는 토끼의 날렵함을 인정하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사장은 말없이 카이를 쳐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어쨌거나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저녁 반찬은 그냥 단무지와 김치로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네? 아니 그..그건 좀... 낚시바늘 묶는게 얼마나 힘들일인지 아시잖아요. 하루종일 서서 찌 보고 어쩌느라 죽을뻔 했는데 단무지와 김치밖에 없다고 하시면... 너무 하세요...”

“아니 하지만 그게 사실 하찮은 물고기는 아니었잖아요... 감성돔 월척이었는데 아까워 죽겠네..."

“에. 어흑...”

입맛을 다시는 박사장과 그 옆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는 카이의 등 뒤로 살구빛 대마도의 석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 멀리 은빛 감성돔 한마리가 펄쩍 뛰어올랐다가 다시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하는 것 같았다.

-계속- (세가지 스승 - 카이의 대마도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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