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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6/20/2016 17:38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세 가지 스승

세 가지 스승 (6)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은 단순히 새벽에 일이 있어서 일어나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템플 스테이를 하러 온 신도들이 저마다 조용히 옷을 갈아 입고 문을 나서는 모습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우면서도 정성스러운 무엇이 담겨져 있었다.

지수도 그들을 따라 옷을 갈아입고 얌전히 법당으로 들어섰다.

말이 새벽이지 아직 캄캄한 밤이나 다름 없던 그 시각에 이미 스님들은 착석해서 향을 피우고 목탁을 두드리며 예불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이 시각에 일어나서 예불을 드리는건가...'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지수였지만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그 엄숙한 모습에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심귀명례...”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이 절 하는 모습을 따라하다보니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대상에 귀의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간절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수는 자신이 어떤 간절함을 가지고 살아왔는가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오델로...'

오델로가 간절한 대상이었을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했다.

간절한 것 같았지만 따지고 보면 승리를 그렇게 갈망한 기억도 없다.

그저 돌아가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정도였다.

오델로가 좋고 재미있어서 하는 것은 맞지만 그정도는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들이었다.

간절함과는 분명 거리가 있어보였다.


예불을 마치고 아침 공양을 한 지수는 산사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처마 끝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컹!컹! 으르르르.. 왕!왕!”

무슨 일인지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우 시끄러. 아니 이것들이 누님이 조용히 생각좀 하자는데 정신 사납게...”

지수가 팔을 걷어붙이고 법당 뒤꼍으로 돌아가니 강아지보다 조금 큰 개 두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싸우는것이라기보다는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을 괴롭히고 있다는 쪽이 더 맞는 말인듯 했다.

당하는 놈은 그저 시끄럽게 짖기만 할 뿐 도망치기 바빠보였다.

“아니 사이 좋게 지낼 일이지 왜 괴롭히는거야... 당하는 애가 불쌍해...”

지수가 뜯어말리려 다가서는데 무언가 개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보였다.

이상한 느낌이 든 지수는 잠자코 그 두마리의 개를 지켜보았다.

도망치던 하얀 개가 처마 밑으로 웅크리고 들어가자 누런 개가 쫓아와서 주둥이를 밀어넣으며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누런 개가 하얀 개를 물어죽이기라도 할 기세였다.

바로 그 때,

“크앙!”

웅크리고 있던 하얀 개가 순간 번개 같은 속도로 몸을 솟구쳐 누런 개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

지켜보던 지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노림...!' 

하얀 개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 집중한 채 결정적인 한방을 위한 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깨앵...깽”

목덜미를 물린 누런 개는 제대로 짖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몸을 빼내 달아나버렸다.

하얀개는 여지껏 도망쳤던 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아나는 누런 개를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우 이녀석들 또 싸웠나 보구나.”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우담 스님이 서 있었다.

“스님...!”

“저녀석들은 4년째 여기서 저러고 삽니다. 사이가 좋을땐 좋다가 싸우기도 자주 싸우고... 재밌는건 늘 흰둥이의 역전승으로 끝난다는거죠. 허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지수가 갑자기 우담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혹시 무아 스님께서 거처하시던 곳이 있는지요?”

“네? 아... 법당 뒤편 암자에서 거처하시긴 하셨지만 지난 2년간 그 곳은 사람의 발걸음이 뜸해진 곳이죠.”

“죄송하지만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스님?”

“흠...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시죠.”

법당 뒷편의 산을 한 5분 정도 오르자 조그마한 암자가 나타났다.

사람의 발걸음이 뜸해진 곳이라 이런 저런 잡초와 낙엽이 뒤엉켜 발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여깁니다만...”

우담 스님이 법당의 문을 열어젖히자 자그마한 불상이 나타났다.

바닥에는 불경들이 너댓권 쌓여 있었고 벽에는 한자로 씌여진 족자가 하나 걸려있었다.

'緣起'

“연기...?”

“네, 무아스님께서 화두로 가져가신 문구입니다. 글씨도 무아스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지요.”

곁에 서있던 우담 스님이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뜻을 설명해주시겠어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세상 모든 현상은 인연으로 성립되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그런 뜻입니다.”

“어려워요...”

“그런가요. 그냥 쉽게 아까 그 누렁이가 흰둥이에게 먼저 시비를 걸고 결국에는 흰둥이가 이기는 과정도 다 인연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

지수는 잠시 푸른 오델로판에 뒤엉킨 흑돌 백돌을 떠올렸다.

저마다 뒤집혀져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오델로의 흑돌 백돌이다. 그러나 한번 더 뒤집히면 원래의 색깔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마지막에 어떤 색깔로 남게될지 모르는 것이 오델로이므로 원래의 색깔이라는 것도 무의미한 것일지 모른다.

분명한 한가지는 상대와 내가 치뤄야할 승부가 존재한다는 것.

'그 승부가 인연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나는 나 자신을 잊고 그 승부에만 집중 하는 것이 인연을 받아들이는 일이겠지...'

돌이켜보면 상대에 따라 지고 싶지는 않지만 딱히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안생기는 승부들도 많았고 이런 저런 사념이 들어간 승부도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잊고 간절한 마음으로 승부 자체에만 집중해본 적이 있던가.'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의 숨통을 끊지 않고 물러서는 습관도 승부 자체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사념이 들어가면서 생겨난 습관일 것이다.

지수는 멍하니 '緣起'라는 글자를 바라보며 한동안 서있었다.


우담스님을 따라 암자를 내려오다보니 어느덧 점심 공양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흰둥이가 꼬리를 치며 지수곁에 서있었다.

아까 자신의 무용을 지켜보던 관객임을 기억하는 것일까.

지수는 쪼그려 앉아 흰둥이의 털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그런데 참, 어떤 답을 얻으러 오셨던거 아니었나요? 답은 찾으셨어요?”

내려가다 뒤를 돌아보며 묻는 우담 스님을 보며 지수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런 것 같네요.”

지수는 흰둥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 웃음을 지어보였다. 흰둥이는 더욱 세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땡그렁 땡그렁 산들바람에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계속- (세가지 스승 - 지수의 템플 스테이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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