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All About Othello

ballzzang wrote this on 07/19/2016 23:27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세 가지 스승

세 가지 스승 (7)

따스한 가을 햇살이 살그머니 드리워진 아파트 단지 사이로 형형색색의 차량들이 일렬로 주차해 있었다.

우스스 떨어지는 낙엽들을 맞으며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들의 모습은 꼭 출동을 대기하고 있는 로봇들의 모습 같았다.

주차장 한켠에서는 아파트 주민들 서너명이 모여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근데 저 아이는 며칠째 계속 아파트 주위를 뱅뱅 돌면서 뭘하고 있는거래요?”

“글쎄, 이 단지 아이는 아닌것 같은데 계속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뭘하는지 모르겠네...”

“중얼중얼 하면서 손도 흔들흔들하고... 쯧쯧, 어린 나이에 정신이 좀 나간거 같은데, 불쌍도 해라 어쩜...”

혀를 끌끌 차는 주민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 어린 아이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단지를 뱅뱅 돌고 있을 뿐이다.

“3, 7, 6, 5 ... 마이너스3”

“5, 9, 4, 1 ... 마이너스1”

“8, 3, 7, 8 ... 플러스4”

“아... 안돼 아직 느려. 더 빨라 져야해”

아이는 갑자기 주차장 주변을 빨리 돌기 시작했다.

“4, 2, 5, 5 ... 플러스2! 8, 4, 5, 6 플러스3!”

“6, 7, 6, 2 ... 플러스3! 4, 8, 7, 5 마이너스2! 헉헉...”

손가락을 까딱이면서 계속 어떤 숫자를 외치던 아이는 십여분을 더 같은 모습으로 빨리 돌더니 아파트 벤치에 걸터 앉았다.

“좋아... 이제 이 아파트 단지도 다 마스터했다. 그러면 다음단계는... 후... 잠시 쉬었다 해야지.”

주차장을 달리던 아이는 숨을 몰아쉬며 잎이 얼마 남지 않은 도로변 은행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비결이 뭔데?”

호기심어린 눈으로 묻는 현서의 얼굴을 보며 의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첫번째는 간절한 집중이지”

“응? 간절한 집중?”

“그래 간절한 집중.”

“그게 뭐야?”

의진은 도로변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말을 이었다.

“보통 바둑같은걸 둘 때는 집중을 하게되지. 어느 정도 둔다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마 네가 한다는 오델로도 그럴걸?”

“그렇지... 집중을 하지 않고 잘 두는 사람은 없어.”

“그래... 그런데 간절한 집중은 조금 달라.”

“어...어떻게 다른건데?”

현서는 침을 꼴깍 삼키며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간절한 집중이란 말야... 이기고 지는 것은 잊어버려야만 하는 집중이란 말이지...”

“아 좀 쉽게 설명좀 해봐봐 그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의진은 약간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현서를 바라보았다.

“너. 게임 막판에 네가 질거 같은 생각이 들면 가슴이 조마조마하거나 떨리지?”

“에?...”

“이러다 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이기는 길이 없을까를 찾지?”

“그건 당연한거아냐! 질거 같으면 당연히 이기는 길을 찾아야지!”

“그런데 계산해야할때만큼은 그런 감정들이 시야를 흐리게 하거든...”

“응?”

잠시 말을 멈췄던 의진이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현서에게 말했다.

“계산은 계산일 뿐이야. 숫자일 뿐이고 숫자는 늘 답이 있지. 하지만 이기는 길을 가르쳐주는건 계산이 아냐. 길을 찾는건 나 자신이다.”

“점점...”

“히히. 좋아 알기 쉽게 설명해주지. 바둑을 둘 때 말야 두 군데에 둘 곳이 있다고 치자. 한곳은 내 집이 2집 늘고 상대집은 1집이 줄어 그러면 몇집 짜리지?”

“나 바둑은 잘 모르지만 3집 짜리지.”

“그렇지. 그러면 나머지 한곳은 내 집은 늘어나지 않고 상대집은 3집이 줄어. 그럼 몇집 짜리지?”

“그것도 3집.”

“그러면 현서 너라면 어디에 둘래?”

“글쎄, 똑같이 3집이면 아무데나 둬도 되지 않을까?”

“물론 수학적으로는 그래. 하지만 승부사라면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심리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먼저 둬야하지 않을까...?”

“흠...”

“먼저 정확한 계산으로 숫자를 뽑아낸 후 그 다음 승리하는 길을 찾는건 나 자신이 찾는거야. 계산을 뽑아낼 때 어떤 감정이 들어가면 둘 곳이 더 있는지 살피지 않고 그냥 먼저 나온 계산대로 손이 나가다가 더 좋은 수를 놓치기 쉽지. 고수끼리의 대국에서는 그 약간의 경솔함이 승부를 가르는 경우도 허다해.”

“...”

“경우의 수를 다 찾은 다음 이왕이면 상대의 악수를 부를 만한 곳을 선택하는 거지. 상대의 악수를 보았다면 준엄한 응징이 필요해.”

“..."

“지금은 잘 이해가 안가더라도 언젠가는 너도 이해하게 될거야.”

같은 나이지만 이미 숱한 승부를 경험하고 고수 반열에 올라있는 의진의 모습이 현서의 눈에는 상당히 의젓해보였다.

“좋아. 그러면 두번째는? 이제 겨우 첫번째 조건 설명 끝난거잖아?”

의진은 갑자기 아무 말 없이 검지 손가락을 현서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으헥? 뭐... 뭐야?”

“이게 뭐지?”

“뭐... 뭐긴 손가락이지.”

“그래 그게 두번째야.”

“손가락이 두번째 조건이라고?”

“그래 어차피 바둑이나 오델로나 더하기 빼기밖에 없어, 맞지?”

“응”

“그런 단순계산에서 착오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머리로만 하는건 좀 불확실해. 몸을 같이 움직여줘야 계산을 좀 더 정확히 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손가락을 사용하는거지.”

“하긴 머리로만 하면 자꾸 방금 내가 센게 얼마였더라 하고 까먹게 되더라...”

“그래 그러다가 다시 세고 어쩌고 하다보면 실수하기 딱 좋다고. 시간에 쫓길 땐 더더욱. 그리고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계산하면 마음도 좀 안정이 되고 집중이 더 잘 되는걸 해보면 느낄 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손가락을 움직여가면서 계산을 해라 이거지? 좋아 세번째는?”

의진은 시선을 잠시 허공에 두고 말을 이었다.

“세번째는... 연습이지. 지독한.”

“...”

현서도 연습이라는 대목에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뭐든지 그렇겠지만 어떤 것을 잘 하기 위해서 연습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하기 빼기 같은 단순한 계산이기 때문에 숫자만 봐도 머리속에서 즉시 답이 나와야해. 나 같은 경우는 길가다가 자동차 번호판이 있으면 그 숫자를 보고 더하고 빼는 식으로 혼자 훈련해왔어”

“자동차 번호판?”

“그래. 늘 길가면서 더하기 빼기 연습을 하기 딱 좋은게 그거지. 4개의 숫자를 각기 더하고 빼서 답을 내보는 건데 숫자를 보는 순간 답이 바로 나오는 수준까지 도달하는게 목표였지”

“그... 그래서 넌 지금 그게 돼?”

“물론. 너도 할 수 있어. 대신 시간은 걸리겠지.”

“난 단기간에 해낼거야.”

“야야, 그렇게 빨리 되는게 아냐.”

“난 지금 급해. 빨리 해내야만 한다고.”

“뭔지 모르지만 급한 사정이 있는가 보구나. 그래, 최선을 다해봐.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봐야겠다.”

씨익 웃던 의진은 할 일을 했다는 듯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있던 현서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듯 우두커니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적한 도로에는 자동차 몇대가 슁슁 가을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현서는 달리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보며 숫자를 세고 세고 또 셌다.

“3, 6, 5, 2... 0”

“5, 9, 7, 4... 마이너스1”

“좋아 이제 빨리 지나가는 숫자를 봐도 바로 답이 나오는 수준까지 됐...”

'끼이익~ 쿵! 부아앙~'

갑자기 커다란 충돌음이 나면서 뭔가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현서가 주위를 보니 오토바이 한대가 박살이 난 채로 도로 한복판에 넘어져 있었고 그보다 10여미터 앞에는 오토바이 운전자로 보이는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가해자로 짐작할 만한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한적한 도로에는 부서진 오토바이와 쓰러진 운전자 그리고 뒤따라 오는 차량 두어 대 뿐이었다.

현서는 뭔가 무서운 느낌이 들어서 슬그머니 다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뭐야 정신 사납게... 신고는 다른 아저씨들이 할테니 나는 계산 연습이나 더...”

현서가 손가락을 움직이며 머릿속에 숫자를 그리는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저만치서 경찰관 한명과 뚱뚱한 아줌마 한명이 현서에게 다가왔다.

“이 아이에요! 이 아이가 아까부터 이 주변을 돌고 있던 아이라서 봤을지도 몰라요!”

“아, 그런가요... 잠시만...”

현서는 갑자기 경찰이 다가오자 겁부터 더럭 났다. 과거 불량 선배의 강압으로 소매치기 같은 것을 몇번 도운 것이 떠올라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왜... 왜 그러세요?”

“아... 조금 아까 도로변에서 뺑소니 사고가 있었거든. 네가 혹시 그 때 그 도망간 차를 봤는지 몰라서 묻는거야.”

“전... 못봤는데요.”

“아 그렇구나... 전혀 못봤니? 그 때 네가 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는 얘기를 아저씨가 들어서말야.”

“네. 전혀 못봤어요.”

“그렇구나... 알겠다.”

“쯧쯧 애가 좀 모자라서 별 도움이 안될 거 같긴 했네...”

뚱뚱한 아줌마가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쪼그리고 앉아있다 일어나면서 경찰관은 혼잣말을 내뱉았다.

“현장 사망 뺑소니 사고라서 좀 골치 아프겠네.. 주변에 cctv도 없고... 인적도 없었고...”

“어머나... 에그 어쩌나...”

“예? 그 오토바이 아저씨 죽었어요?”

현서의 물음에 경찰관은 뒤돌아서다 말고 다시 현서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 사고 현장을 목격했구나..?”

“...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못봤어요.”

“잘 기억을 더듬어줄래? 뭘 본게 없는지. 뺑소니를 친 나쁜 사람은 잡아서 벌을 줘야하지 않겠니?”

현서는 사고로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했다. 그런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상대의 악수를 보았다면 준엄한 응징이 필요해.'

“3 6 5 2 제로, 5 9 7 4 마이너스1”

“뭐라고?”

“이거봐요 얘 어린애가 좀 정신이 나갔다니까.”

아줌마가 뭐라고 하자 경찰관이 아무 소리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자동차는 못봤지만 그 때 지나가던 자동차는 2대만 있었고 그 번호를 기억해요.”

“오오 그래? 그게 뭐니?”

“3652하고 5974요”

“아 그래? 그것만 있어도 훨씬 수월하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거 같구나.”

경찰관은 차량 번호를 메모한 뒤 휴대폰을 들어 통화를 시작했다.

“아.아. 당시 지나가던 차량 2대 번호 제보. 상부 보고 바람. 목격자의 진술. 오케이 그 목격자는... 응?”

경찰관이 통화를 하다말고 현서쪽을 돌아보자 거기에는 아무도 없는 빈 벤치 뿐이었다.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지는 어느 가을 저녁 주차장 한켠에서는 아파트 주민들 서너명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그 때 그 이상한 아이가 얼마전 뺑소니 친 차 번호를 기억해서 알려줬다매?”

“그런가봐요. 그래서 결국 범인을 잡았대~ 걘 자동차 번호를 어떻게 외웠는지 몰라.”

“이상한 아이라고 뭐라고 했더니만... 신통한 아이였네... 근데 요즘은 통 안보여요?”

“그러게 말야, 어차피 이 동네 사는 아이도 아니고 해서 잘 모르는 터라...”

주민들이 얘기하는 곳 담장 뒤 편으로 한 아이가 손을 흔들며 걷고 있었다.

그 아이는 머리속으로 오델로 기보를 그려가며 입으로는 숫자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27, 4, 2, 5, 4, 30...”

“27, 5, 3, 4, 2, 31...”

“27, 5, 2, 6, 3, 33! 여기다!”

“다음은... 29, 3, 2, 4, 3, 31...”

아직은 어슴푸레한 초저녁 가을 보름달이 아이의 흔들거리는 손가락 끝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계속- (세가지 스승 - 현서의 속셈 훈련 편 끝)


이전 | 목록 | 다음

Icons made by Roundicons, Freepik, Madebyoliver from flaticon.com is licensed by CC 3.0 BY

ballzzang

오델로 소설가, 공인 초단

Social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