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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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10/15/2017 15:34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승부의신

승부의 神 (4)


"후아..."

흑이 33으로 승리한 것을 확인한 후 카이는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맞은편의 상대가 싱긋 웃으며 카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뒀습니다."

카이도 얼결에 상대와 악수를 나누며 말했다.

"아, 예. 잘뒀습니다. 운이 좋았네요."

"상당히 강하시군요."

"에. 별로 그런건 아닌지도..."

카이가 뻘쭘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남자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닙니다. 강하신거 맞구요. 카이씨라고 했던가요?"

"네..."

"어쩌면 이번 세계대회 대표로 카이씨가 선발될 수도 있겠네요."

그 말을 들은 카이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세계대회 대표를 노리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말을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1라운드 끝났으니까... 알 수 없죠."

"아닙니다. 아까 어려운 길을 버리고 확실한 +2의 수순을 정확히 밟는 것을 보고 카이씨의 실력이 상당하다고 느꼈습니다."

"아..."

카이가 멋적어 하며 머리를 긁자, 남자는 다시 한번 씨익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제가 작년에 한국 대표로 세계대회에 참가했었거든요."

"예? 작년 대표요?"

카이가 깜짝 놀라서 되묻자 남자가 대답했다.

"예... 그런데... 세계대회 예선 라운드는 총13라운드입니다. 제가 몇승을 했을 것 같나요?"

"글쎄요 님도 세신 분이니까 한 8승 정도? 아니면 9승?"

그러자 남자가 갑자기 손을 쫙 펴더니 카이의 코앞에 갖다댔다.

"뭐... 뭡니까?"

"5승입니다. 이틀동안 단 5승밖에 올리지 못했어요."

"설마..."

"아닙니다. 세계대회에서는 이 정도 실력으로는 죽어라하고 둬봐야 5승정도 밖에 못합니다. 그것도 운이 좋아서 그정도였어요. 한국이 오델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선수들과 칼을 겨눌 정도의 실력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음..."

카이는 생각보다 세계대회의 수준이 높은 것에 대해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혹시 대표로 선발되시면 더욱 정진하셔서 꼭 좋은 성적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를 보며 카이는 잠시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대표가 된 다음에도 세계무대에서 뛰려면 더욱 실력을 늘려야 한다는거군.'

"아 참, 현서와 오사범은 어떻게 됐지?"

카이는 이제 생각났다는 듯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테이블로 향했다.


'끙. 이 꼬마녀석이 흔들림 없이 엔딩을 할 줄이야...'

입을 반쯤 벌리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는 한동안 반상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꼬... 꼬마야, 너 그 짧은 시간에 엔딩을 다 보고 있었던거냐?"

"그 정도 엔딩은 쉬운거니까요. 맨날 연습한 부분이었는데."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대답하는 현서를 보며 머리가 듬성듬성한 중년의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쳇. 꼬마녀석이 보통이 아니군. 한때는 나도 오델로계에서 한칼했었는데.'

남자가 툴툴대며 자리에서 일어설 때 현서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현서 이겼네?"

"아, 카이형!"

대국이 끝난 반상의 돌갯수를 세는 카이를 보며 현서가 반갑게 소리쳤다.

"오? 백으로 40개나 남겼네? 좋겠다 현서. 큭 큭."

"뭐 이정도야.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큰일날뻔 했지만. 내가 초시계를 누르는걸 잊었거든"

현서가 가르키는 곳에는 불과 2초만이 남겨진 초시계가 놓여져 있었다.

"뭐야, 2초? 큰일날뻔 했네 너. 시간패는 항상 조심해야..."

"그치... 형은 어떻게 됐어? 이겼어?"

"간신히 33개 남겼다... 후..."

"뭐야, 잘난체 하더니 진짜 간신히 이겼네 킥킥."

"시꺼 임마. 엉아가 이제부터 진짜 실력을 보여줄거야. 잘 보라고."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 올리는 카이의 뒤쪽으로 대국을 막 끝낸 지수의 모습이 보였다.

"오사범님께 가보자 형. 어찌 됐는지."


"아가씨, 오지수 초단 맞죠? 아유~ 왜 이리 잘둬~ 깔깔."

지수는 갑작스런 상대의 칭찬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요. 선생님이야 말로 정말 잘두시던걸요."

"호호. 내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다며 활짝 웃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서 지수는 상대가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패배는 아픈 법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패배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느냐이다.

그런면에서 상대는 지수로 하여금 패배를 감내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무튼 남은 라운드도 잘 해서 꼭 대표로 선발되시길 바래요 아가씨. 호호."

"예? 선생님도 아직 6판이나 남았는데 결과는 모르는거죠."

지수가 쑥스럽게 대답하자 자리에서 일어나던 상대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내는 이제 나이를 먹어서 안돼요~ 깔깔"

'이제 나이를 먹어서? 젊은 시절부터 둬왔다는 얘긴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단 말야 저 아주머니. 그러고보니 내 이름도 알고 있었고...'

지수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카이와 현서가 지수 곁으로 다가왔다.

"오~~ 오사범 이겼네? 34인가 이거...?"

카이가 손가락을 들어 돌갯수를 세어보면서 말했다.

"응. 좀 어렵게, 간신히 이겼네... 호홋"

"이야~ 사범님 축하드려요 헤헷."

현서가 양쪽 엄지를 세우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현서 넌 어떻게 됐어? 카이는?"

"훗. 우리들에게 1라운드는 쉽게 넘어서줘야하는 것 아니겠어? 껄껄."

카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킥킥킥"

셋이 덕담을 나누며 웃고 있던 그 때, 카이의 뒤쪽으로 1라운드 페어링 전 잠시 시비가 붙었던 그 네사람이 지나갔다.

"저봐라. 1라운드 한번 이겼다고 저리 좋아하는거. 킬킬."

강원장이 말하자 옆에있던 안경쓴 여자가 거들었다.

"그것도 33, 34로 간신히 이긴것 같던데요."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없지. 헤헤헤..."

중학생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카이의 귀에 그들의 대화가 들어오자 카이는 험악해진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 이 자식들이 근데..."

지수와 현서가 카이를 억지로 붙들었다.

"아이 참 참아. 여기서 싸우기라도 할 생각이야?"

"저런 네가지 없는 것들은 손을 좀 봐줘야..."

얼굴이 벌개진 카이 쪽으로 아까 카이는 자신의 적수가 안된다고 했던 남자가 다가왔다.

"유민혁 9단은 어디 있나?"

카이는 그 남자의 입에서 유민혁이라는 말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뭐야, 이 자식. 유사범님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거야?'

"나도 몰라. 우리도 유사범님이 참가 하는 줄 알았는데 안오셨어. 연락도 안된다고. 그런데 네가 유사범님을 어떻게 알아!"

뒷편에 서서 카이의 말을 듣던 강원장의 입꼬리가 잠시 씰룩였다.

젊은 남자는 잠시 카이를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을 했다.

"...그랬군. 할 수 없지. 아쉬운대로 그 제자라고 하는 너희들한테라도 분풀이를 해야겠군."

"뭐... 뭐야!"

이번엔 카이 뿐 아니라 현서와 지수도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씨는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현서가 소리쳤다.

"꼬맹아. 우리를 만나기전까지 승수나 쌓아놔라. 안그러면 같이 붙어보지도 못하고 하위권으로 쳐질라."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현서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대며 말했다.

"당신들, 무례하군요!"

지수도 더는 못참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정말 화가 난다면 반상에서 해보라고. 얼마든지 받아줄테니. 호호"

안경을 낀 젊은 여자가 비아냥거렸다.

"어디 그 잘난 실력 좀 이따 보게 될테니 일단 2라운드 페어링이나 기다리시지."

이내 냉정함을 되찾은 카이가 또박또박 말했다.

"그럽시다.. 그럼. 후후."

비웃음을 머금은 강원장 일행이 중앙 테이블로 향하는 모습을 보던 현서가 지수에게 돌아서면서 입을 열었다.

"사범님 아까 이기고 지는 것은 신경쓰지 말고 기보가 중요하다고 하셨죠?"

"응... 왜?"

"...하지만 나 저사람들 꼭 이기고 싶어요. 꼭이요."

이기고 싶다는 말을 하는 현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아이, 정말로 분노하고 있어...'

지수도 심각한 표정으로 현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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