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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3/27/2016 00:12 in 오델로, 세계대회, 참가기

볼짱의 세계대회 참가기 (3)

자그마한 영국의 게스트하우스는 최신식 호텔보다 당연히 불편함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그정감있는 분위기 탓에 따뜻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1층 식당에서 제공되는 영국식 아침식사는 계란과 베이컨 같은 평범한 메뉴였지만 무언가 오리지널의 정통한 맛이 배어 있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무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을법한 클래식한 분위기 아닌가.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유럽으로 와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접하는 아침식사는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델로 세계대회 참가차 방문한 도시이지만 이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세계 어느 곳에서 대회가 치뤄지고 그곳을 참가하면서 여행까지 겸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 오델로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둘째날이 밝았다. 둘째날 벌어지는 6라운드는 중위권에겐 상위권 진입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으며, 하위권에겐 중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첫째날 나는 2승밖에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하위권끼리 두게 될 터였지만 말이 하위권이지 중위권 도약이 충분한 사람들도 많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러나 방심이라는게 나 머리속으로 들어갈거야 예고하고 찾아오는게 아니다. 이런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이 낸시라는 벨기에 여성하고 둘 때 서양 여류는 1라운드에서 만났던 캐롤라인 아주머니 정도 수준일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었나 싶어서다.

간신히 버텨가다가 뒤로갈수록 망한판이라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많이 느낀 대국이었다.

여류라고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엄연한 한나라의 대표이며 상당한 포텐셜을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만약 여류대표를 만만히 보다가 패했다면 그는 당해도 싼 플레이어이다.

어찌됐던 이 낸시라는 벨기에 여성 선수는 나보다는 쎈 느낌이었다.

어제부터 치면 6연패를 하고 있는 탓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상대는 아직 승을 얻지 못하고 있는 최하위 플레이어였으니 그녀가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승부의 세계는 비정하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직접 겪어보면 지는건 당연히 안되고 이겨도 맘놓고 좋아하기 힘든 경우가 참 많다.

나는 최하위 체코의 안드레아를 맞아 반드시 1승을 해야하는 상황, 상대는 무조건 1승이 간절한 상황. 그러나 나는 애석하게도 쉽게 그녀를 따돌리지 못했다.

중반에 상대 수를 죽이는 것은 실패했기에 엔딩에서 승부를 봐야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기는 길이 눈에 잘 안들어오는 것이다. 분명 내가 이기는 길이 있는 모양인데 수순이 그려지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져서는 안되는 상대를 만난 것에 대한 부담에서 비롯된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그렇지 최하위 선수를 만나 이렇게 헤맬줄은 상상도 못했다.

설마 지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를 느끼기를 여러 번. 상대 선수가 시간에 쫓겨 실수를 했는지 어쨌는지 간신히 4개를 더 남기는데 성공했다. 시간을 두사람 모두 거의 풀로 쓰면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선두다툼만 치열한것이 아니라 1승의 간절함이 있는 사람끼리의 싸움도 무지 치열한 것이다. 처절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솔직히 다른 선수들은 쉽게 제압하던 이 선수를 맞이해서 이렇게 고전한 것에대해서는 많은 반성이 필요했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또 다른 의미로 부끄러웠던 라운드였다.

천신만고 끝에 연패를 끊었으니 남은판 최대한 승수를 쌓아야 한다. 대국시작을 알리기전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이겨야 한다. 이기고 싶다.

애초에 승부근성이 유별나지 않은 나로서는 이토록 간절히 상대를 이기고 싶었던적이 없었다. 실력도 가늠안되는 벨기에의 페퍼캄프라는 선수를 앞에 두고 나는 오로지 판만 내려다보며 집중 또 집중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집중을 하다보니 엔딩때 흑을 쥔 내가 패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돌도 많아보였지만 마지막 남은 칸을 내가 두면 상대의 한 라인을 도로 다 뒤집을 수가 있다.

‘이건… 승산이 있는데…!’

다 두고 돌수를 세보니 39:25로 나의 승리였다.

아무래도 이기고 싶다는 간절함이 내가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국을 끝내고 대기실로 내려가는데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진채 다리가 휘청였다. 죽을힘을 다한다는게 이런 것인가. 정말이지 울면서 둔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이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간절함이 만들어준 승리라는 생각이 드는 판이었다.

점심을 먹고 맞이한 오후 경기.

남은 판은 이제 3판. 만약 전승을 한다면 그래도 중위권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테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이론에 불과한 가설이었다.

아르헨티나 여류에게 보기좋게 얻어맞고 만 것이다. 로즈 오프닝의 여러갈래 중 하나가 나왔는데 내가 모르는 길이 나와서 초반부터 질질 끌려다니다가 51:13로 대패를 하고 말았다.

이 판을 지고 든 생각중의 하나는 오델로 세계대회에서 플레이하려면 많은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하면 다 끝나고 대기실에서 협회장과 복기해보니 상대는 그 오프닝의 거의 최선수를 알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난 그것을 몰라서 초반에 딱 하나 잘못 뒀는데 그 이후로는 이길 수 있는 길이 아예 사라졌던 것이다.

게임을 즐기려면 꼭 외워야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세계대회에서 승부를 하려면 상대방이 모르는 거 하나를 내가 더 알면 그만큼 유리하고 상대방이 아는거 하나를 내가 모르면 그만큼 불리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뜻이다.

라운드가 끝날때마다 대기실에 가면 많은 선수들이 이겼든 졌든 자신이 둔 기보를 제브라 어플리케이션이나 각자의 노트북 등으로 복기해본다.

흡사 시험이 끝나고 답맞춰 보는 학생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게중에는 유명 선수들도 많이 있으니 가서 함께 복기하면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언어가 서로 같지 않고 피부색이 달라도 오델로라는 매개 하나로 저렇게 플레이어들이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는 모습이 낯설지만 멋져보였다.

이런 느낌은 세계대회를 참가해보지 않으면 진정 느낄 수 없는 것일지니.

말은 안통해도 흔쾌히, 그리고 진지하게 늘 응해준 이탈리아의 보라시 선수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세계대회를 나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세계 정상 선수들의 플레이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인데, 이것이 왜 중요하냐하면 내가 즐기고 있는 게임의 극한을 목격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수준과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타카나시와 수에쿠니가 마침 나란히 앉아 예선 라운드를 벌이고 있었다.

체력이 다했는지 체코의 남자 선수를 만나 기억도 안나는 수순으로 그냥 밋밋하게 패하고 나서 저들이 두는 모습을 관전하다보니 아 나는 아직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오델로 햇병아리 수준도 안되는구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은 오델로 기술도 최고지만 뭐랄까 임하는 자세는 진지함을 넘어서 엄숙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대회라지만 옆에서 볼 때는 이미 보드게임의 수준을 넘어선 그 어떤 경지에 있었다.

얼핏 지나치기 쉬운 스토리가 하나 있다. 저들이 대국중 마시는 일본 녹차는 당연히 캠브리지에서 구입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다. 일본 선수단은 마실 음료수까지 일본에서 공수해온단다. 총13라운드니까 선수 1인당 최소 열병 이상이어야 하는데 협회 차원의 지원도 지원이지만 저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쓰면서 대회에 임하는 그 일본 선수단의 자세에는 정말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도 저 둘이 여지없이 우승, 준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세계 정상들이 저렇게 신경쓰면서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준비했는가 생각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세계랭킹 1,2위를 다투는 사람들이 저렇게 두고 있는 모습을 옆애서 지켜보고 겸손해지지 않을 플레이어가 과연 있을까.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까지 왔다.

4승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마지막 라운드를 이겨 5승은 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싶었다. 5승이 훌륭한 성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첫출전에 5승이면 평타정도라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수준을 감안한 얘기겠지만)

내 상대는 벨라루스의 여류. 참가 여류중 가장 젊어보이는 선수였는데 나라이름마저 생소한 벨라루스 선수를 상대로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이 무조건 이겨야 했다. 4승과 5승은 어감부터가 다르다.

이 선수도 하위권이어서 좀 쉽게 풀어나가게 되려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 의외로 끈끈히 버티는 면이 있었다. 뭐랄까 경험부족으로 힘은 좀 약한데 버티는 수들을 잘 둬서 이쪽에서 착각 한번하면 큰일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그래서 엔딩이 약한 나로서는 좀 많이 긴장을 하면서 마무리를 했던 것 같다. 다행히 36:28로 승리. 어렵게 승리를 가져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마지막 라운드를 이겨 5승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서 불행중 다행이었다. 최소한 다른 선수들 스코에에 묻어갈 정도는 되었으니.

그런데 이 벨라루스 선수 때문에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마지막날 위너 파티 때 선수들에게 작은 칵테일이 한잔씩 주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칵테일 마실수 없다면서 주스를 마셨는데 알고보니 미성년자. 심지어 우리나라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3정도 나이라고 한다. 어쩐지 대국중에 뭔가 애들처럼 약간 산만한끼가 있더라니… 그러나 정말 20대 중반은 돼보이는 이 소녀(?)가 왜 오델로 볼모지인 벨라루스에서 단독 출전을 했는지 궁금하긴 했다.

최종 훌륭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이 벨라루스 소녀의 용기와 도전에 같은 플레이어로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오델로 세계대회는 보통 4일 일정이다. 전야제, 예선7라운드, 예선6라운드, 그리고 준결승/결승(남녀)+위너 파티.

그러니까 비록 준결승 이상 진출하지 못한 플레이어라도 마지막날에는 준결승 결승 관전도 하고 파티도 참가해서 함께 즐기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세계 유명 플레이어의 해설과 함께 실시간 중계를 모여서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였다. 장소가 캠브리지여서인지 임레 리더(캠브리지 수학과 교수)가 주로 진행을 했고 다른 유명 선수들도 간간히 해설에 참여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 해설보다도 이런 사람들 틈에 내가 끼여있다는 사실을 즐겼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사람들 속에 내가 속해 있다는 자체만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준결승 결승이 진행되고 위너 파티 전까지는 점심도 먹어야 하는데다가 오후 시간이 좀 빈다. 그래서 협회장님 일행과 함께 점심도 먹을 겸 인근 캠브리지를 좀 돌아보았다.

날씨도 흐리지 않게 받쳐준 덕에 여러 멋진 대학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승부는 끝났고 결과는 일단 저 멀리 던져놓은 상태니 주변의 풍경이나 건물들이 비로소 눈에 잘 들어오기 시작했다. 홀가분하게 대학 도시의 경치를 즐겼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오델로 대회는 매년 있을지언정 다시 캠브리지에서 할지 어떨지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세계대회는 보통 큰 도시의 호텔이나 대회장 같은 데서 한다는데 그런면에서 본다면 이번 캠브리지 대회는 역사 깊은 대학에서 개최된, 아주 특별한 대회 개최지로 기록될 듯 하다.

위너파티를 이런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큰 홀에서 하다니.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사실 캠브리지 대학 중 유명한 트리니티 컬리지다. 원래 여기가 만찬회장으로 쓰이는 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벽에 걸린 저 커다란 초상화들만으로도 역사와 전통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한번에 전해진다.

긴 테이블보와 와인잔 사이로 저마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오델로라는 게임 하나를 가지고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웃고 떠들며 친구가 된다.

주제 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력 관계없이 세계대회 참가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평생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힘든 장면도 많았지만 그 어떤 경험보다 귀하고 값진 것들을 겪지 않았는가. 이렇게 매년 전세계 플레이어들을 모아놓고 하나로 만들어주는 축제가 열리는 취미가 다시 있을까 싶다.

나는 어찌하다 보니 태국 선수단 테이블에 앉게 되어 그들과 손짓 발짓 해가며 이런저런얘기들을 했다. 이들을 보려면 다음에 또 세계대회를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2015 오델로 세계대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나 개인으로서는 파란만장한 3박 4일이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다시 겪기 힘든 익사이팅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추억이란 것도 별게 아니다. 자기가 살아온 궤적이 뒤돌아보면 추억이 되는 것일텐데 지나고 보면 다 좋은 일이 되는 것 아니던가. 내가 5승을 했든 6승을 했든 뭐 그렇게 인생이 달라졌겠는가.

중요한 것은 나의 승리 하나보다도 내가 캠브리지까지 날아가서 태극마크를 달고 열심히 싸웠던 내 청춘(은 아니지만)의 한자락이 아닐까.

이 실력에 세계대회는 무슨… 이라며 손사래를 쳤던 것도 사실이고 보통의 경우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했던 몇 안되는 잘한 선택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오델로 역사에 동참해서 자그마한 기록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일을 했다고 생각하려 한다. 더욱 정진해서 실력을 쌓으면 다음에는 또 다른 어느 도시에서 이 선수들을 만날 수 있겠지.

그 때까지 모두 굿 럭.

굿바이 캠브리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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