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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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볼짱, 그린 wrote this on 04/08/2016 17:30 in 오델로 세계대회, 바르셀로나, 무라카미 타케시

바르셀로나에서

세계챔피언을 3번 한 무라카미 타케시 9단. 그의 블로그에 좋은 글이 있어서 저자의 허락을 얻어 소개합니다. 하야님이 번역해주시고 볼짱님이 글을 다듬어주셨습니다. 무라카미가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도쿄 아자부학원의 회보에 실린 글입니다.

  • 그림 번호가 여러개가 합쳐진 경우, >>버튼을 눌러서 따라가면 됩니다.

스페인의 파리라고도 불리는 바르셀로나. 플라타너스 나무가 힘차게 우거진 큰 대로변을 끼고 낡은 석조건물이 들어선 이 아름다운 마을을 나와 내 아내가 방문한 것은 1998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 해 전일본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나는 이 마을 어귀의 갤러리 호텔에서 개최되는 제22회 세계 오델로 선수권대회에 일본대표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 가능한 인원은 한 나라당 최대 세명의 대표선수. 이번 대회에는 17여개국가에서 38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선수는 이틀에 걸쳐 13대국을 펼치게 되는데 한 대국당 시간은 각 30분씩. 즉 한 시합당 최대 1시간이 걸리므로 첫날 7라운드 둘째 날 6라운드로 진행된다. 상위 4명은 마지막 날 열리는 준결승 3번기로 진출하는데 나는 운좋게 예선을 10승3패, 2위로 통과할 수 있었다. 3일째 준결승 상대는 미국의 미네 타츠야 선수. 그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오래 알고 지낸 일본인이었다. 대접전의 1국을 33대31로 제압하고 2국을 완승한 나는 2연승으로 결승 3번기에 진출했다.

점심 휴식을 취한 나는 특별 대국실에 앉아 있었다. 그 방엔 2명의 대국자와 1명의 심판뿐. 그 외 많은 선수와 관계자는 전일 예선이 진행된 홀에 머물러 있었다. 홀 벽면에 비춰지는 결승전 장면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선수들이 자기 나름의 형세판단을 얘기하거나, 다음 수를 생각하거나, 자신의 수읽기를 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선수들이 나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오델로 보드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국은 이미 종반을 향하고 있었다.

결승전 상대인 에마뉘엘 카스파르(프랑스)도 보드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지질학 전공의 학생으로 그해 유럽에서 개최된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한 그의 표정은 자신에 차있었다.

[그림1]
1번 그림에서 흑이 안전하게 둘 수 있는 곳은 a1의 공간뿐이지만 백이 a2로 대응하면 또다시 흑차례. 거기서 남은 세 곳은 어쨌거나 상대에게 공짜로 코너를 내주는 악수였다. 1번 그림은 조금이라도 오델로에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흑이 당연히 지는 것으로 생각할만한 국면이었다. 그러나 나는 10수전 흑39수째를 두는 단계에서 이미 누구나 지리라고 예상을 한 이 장면에 흑의 묘수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스파르는 그 수를 미처 보지 못했다. 39수째 이후의 10수를 모두 나의 예상대로 둬나간 것이 그 증거이다. 나는 잠시 수읽기를 한 후에 다음 수를 뒀다.
G7 [그림2]
‘자… 코너를 취해라~’하고 나는 마음 속으로 카스파르에게 주문을 외웠다. ‘여기서 당연히 h8의 한 수 뿐이겠지.’ 그러나 카스파르는 좀처럼 다음 수를 두지 않았다. 그는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하나하나 수를 읽어 나갔다.
G7h8 [그림3]
카스파르가 읽은 수의 내용을 검증해 보자. 백은 50을 두고 코너를 취하는 한 수가 보인다.
G7h8h7 [그림4]
흑은 51로 대응한다.
G7h8h7h5 [그림5]
백52를 둬서 주위를 모두 뒤집는다.
G7h8h7h5g2 [그림6]
여기서 흑53이 절묘한 수. 백은 다음에 h1의 코너를 취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백이 b7을 두면 흑a7! 백이 a6이면 흑a1, 백a2, 흑b7! 어쨌거나 백은 h1의 코너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 흑승이 되어버린다.

39수째부터 생각하고 있던 원대한 구상을 카스파르는 여기서 처음 알아챈 듯 했다. 장고 끝에 그는 방침을 변경했고 국면은 내가 예상치 못했던 난해한 마무리로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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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실전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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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 50이란 좋은 수에 당황한 나는 최후의 장고-라고 해도 남은 시간은 1분정도가 고작이었지만-를 했다. 시간패도 패배를 의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택의 길은 a7과 h1 두 곳 뿐이지만 그 양쪽을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흑h1을 선택해서 그 뒤의 흐름을 읽어나갔다. 이후는 거의 외길로 백이 h5 흑a7 백a8 흑h7 백h8이 된다. 나는 필사적으로 돌 수를 헤아렸다.

‘부족한가?!’ 내가 낸 결론은 백이 6개차로 승리(흑29 백35). H1을 둬서는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a7은…?’ 남은 시간은 30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델로에서는 돌을 뒤집는 시간도 소모시간으로 카운트 된다. 여기서 a7이후의 수순을 계산한다면 시간부족으로 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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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다 읽지도 못하고 그대로 55를 뒀다. 중반까지 많이 남아있던 카스파르의 시간도 2번 그림에서 장고를 한 탓에 별로 남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부터 두게 되는 수들은 둘 다 거의 노타임으로 진행시킨 수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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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이 여유가 있는 경우는 최종적으로 돌 수를 세어나가면서 좁혀간다. 그러나 이 대국의 종반에 놓여진 우리 둘은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대국이 끝나고 필사적으로 돌 수를 계산했다. “Thirty white?” 내가 돌을 다 세기도 전에 심판인 에마뉘엘 라자르(프랑스)가 말했다. 이 말은 17년이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보통은 이긴 쪽의 돌 색깔을 사용하여-예를 들면 ‘Forty white (백이 40개로 승)’이런 식으로-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라자르가 백승이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응? 진건가…?’ 그런데 다시 보니 흑이 좀 더 많이 남아 있는 듯 보여 믿기지가 않았다.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돌을 세어 내려갔고 흑돌이 34개인 것을 확인했다. 동시에 ‘Thirty white’는 백의 30개 패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역시 흑의 승리였다. 안도를 한 나는 카스파르와 서로 악수를 하고 홀로 돌아왔다.

나에게 다가온 미국의 브라이언 로즈가 “졌었어요”라고 능숙한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는 부인이 일본인으로 일본기업에 근무한 적이 있다. “어? 종반은 흑이 계속 좋았던 것 아냐?”라고 말했더니 이내 로즈는 컴퓨터를 꺼내 내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G7h8h7h5g2 [그림6]
이것은 나와 카스파르가 흑승이라고 잘라버린 장면도이다. 하지만 사실은 백승이었다.
G7h8h7h5g2a6a1 [그림18-19]
54에 대해 백h1을 방어하려 b7을 놓으면 세로의 백이 모두 뒤집어져서 백에게 a1의 코너를 빼앗긴다. 따라서 7은 필수. 여기서 나도 카스파르도 다음의 백a2는 필수라고 생각하고 이후 흑b7이면 흑이 이긴다고 알고 있었지만,
G7h8h7h5g2a6a1h1 [그림20]
헐…56으로 코너를 빼앗기면 다음은 흑이 a2에 놓을 수 없게 되고 다음 흑a7이면 백b7 흑패스 백a2 흑패스 백a8로 백의 20개차 승리(42대22) 흑b7로도 백a8 흑a7 백a2로 백의 10개차 승리(37대27)이 된다. B3에서 g8의 대각라인의 어느 것이라도 흑돌이 있었다면 20번 그림에서 흑a2 놓고 이후 백 패스 흑b7 백a7 흑a8로 흑이 승리할 수 있을텐데…
G7 [그림2]
나는 브라이언의 설명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내가 10수 전부터 구상해서 일격필살을 확신한 승부수 1에는 잘못 읽은 부분이 있었고 2번 그림에서 카스파르가 그냥 우하 코너를 취했으면 나는 졌을 것이다. 그러나 카스파르는 몇 수 후 흑의 묘수를 정확히 예상하고 이래서는 지겠구나 하고 수순을 변경한 것이다.

2번그림에서 거의 대부분의 선수는 노타임으로 백h8과 코너를 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6번 그림에서 5를 빼앗기고 당황, 그러나 이하 필연적은 수순으로 7까지 진행하면 거기서 백h1을 발견하는 것은 쉽다. 약한 자가 이기고 강한 자가 지는 대국도 있는 것이다. 승부의 묘미이기도 하다.

결승3번기의 1국에서 승리한 나는 그 이후 두 대국을 무승부와 승리로 이어갔고, 1996년 도쿄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3일간 펼쳐진 18경기(예선 13회, 준결승 2회, 결승 3회)에는 그 나름대로의 드라마가 있다. 그러나 이 결승 제1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인상이 남아있다. 33년 오델로 선수생활에 있어 다시 한번 기술 수준의 한 획을 그어준 일국이었고 또한 아무리 기술을 갈고 닦아도 넘을 수 없는 승부의 기묘함을 보여준 일국이었다. 나의 오델로 인생을 밝혀준 빛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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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세계대회 결승3번기중 제1국
흑 무라카미 타케시 (일본) vs 백 에마뉘엘 카스파르 (프랑스)


당시 바르셀로나 갤러리 호텔


글쓴이: 무라카미 타케시
옮긴이: 하야로비
다듬은이: 볼짱
엮은이: 그린
원문: 「2016麻布学園PTA会報」
http://blog.livedoor.jp/othello2011/archives/85472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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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오델로 운영자이자 전 한국 챔피언, 전 국가대표, 현 공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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