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쯤 지났을까. 낯선 남자는 표정이 굳어지며 갑자기 화를 버럭냈다.
“너! 아까는 꽤 잘두지 않았나! 긴장을 하는거냐. 이게 뭐야!”
현서는 울듯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서 두고 있다고요... 아까 내가 뭘 어떻게 뒀다고 이러는...”
“핫?! 설마...”
남자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뭐... 뭐야. 혹시 다른 사람이 뒀던거냐?”
“아... 그게... 그러니까...”
현서는 아까 민혁이 몇수 둬줬던 판을 기억해냈다.
“오호라 다른 사람이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이 학원에 너 혼자 있었을 리가 없지.”
남자가 무언가 먹잇감을 찾는 독사처럼 주변을 매섭게 두리번 거리면서 말을 했다.
“그 사람은 어디있나?”
“모..몰라요 전!”
남자가 갑자기 현서의 팔을 꽉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어디있냐니까!”
“아... 이거 놔요 아프다구요! 아저씨 깡패에요?”
그 때 학원 문이 덜컥 열리며 민혁과 지수가 들어왔다.
“어맛!”
“애에게 무슨 짓을! 당신 누구에요!”
지수가 달려와서 현서와 남자를 떼어놓을 때 남자와 민혁의 눈이 마주쳤다.
“오... 당신이구만. 고수는 고수의 눈빛만 봐도 알아보는 법이지. 훗”
“누구냐 넌.”
차가운 표정의 민혁이 말했다.
“나? 난 카이라고 불러주면 된다. 그 이상은 묻지마. 그저 오델로 고수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큭큭”
“여긴 어떻게 알고 온거에요? 당신 건달이지? 행패를 부릴 곳이 따로 있지. 가만있어봐. 경찰을...”
핸드폰을 집으며 소리치는 지수를 민혁이 가만히 손으로 저지 시켰다.
“사범님. 왜...”
“저 자는 아무래도 나에게 용무가 있어서 온 것 같으니까...”
“잘 이해하는구먼. 그러면 간만에 두뇌 좀 풀어볼까.”
남자가 입을 비죽거리며 내뱉듯 말했다.
“후... 저 남자 도장깨기라도 하겠다는거야 뭐야. 현서야 괜찮니?”
“응 괜찮은데... 저 인간 뭔가 좀 독사 같아. 기분 나빠”
지수가 걱정스레 묻자 현서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오델로 판을 사이에 두고 민혁과 카이라는 남자가 마주 앉았다.
갑자기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치면서 강한 장대비가 회색빛 도시에 마구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둬볼까.”
흑을 쥔 남자가 다섯번째 수를 두었을 때, 지수가 나지막히 소리쳤다.
“스네이크!”
“응? 그게 뭐야?”
현서가 물었다.
“일본 랭킹 1위 타카나시가 자주 써서 유명해진 오프닝인데 아주 복잡하고 난해한 정석이야. 한수만 삐끗해도 독사에게 물리듯 바로 끝장이 나버리지...”
“뭐야 저 인간. 오프닝도 꼭 지 같은 걸 쓰네.”
오프닝을 두어가던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는 스네이크의 수많은 함정수에 통달한 사람이다. 받을 수 있으면 다 받아보라고. 한 수만 잘못 둬도 대국은 바로 끝나버리지”
“...그런가.”
민혁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고는 바로바로 응수를 했다.
잠시 후 민혁이 엑스스퀘어에 찌르고 들어왔을 때 남자는 얕은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음... 그게... 성립이 되나?”
남자의 손길이 차츰 느려지기 시작했다.
“스네이크의 모든 변화에 통달했다며. 이건 처음 보는 모양이지?”
민혁이 사내의 얼굴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끙... 이건 분명히 안되는 곳이라고 봤는데 왜 다음 수가 안보이지...”
엔딩에 들어갈때까지도 민혁의 손은 거침이 없는 반면 남자의 손에는 이미 힘이 빠져있었다.
마지막 수가 놓여지고 돌수를 세어보니 38대 26으로 백의 승리였다.
“으으...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다니... 그럴 리가 없어. 다시 둬보자”
“몇번을 해도 마찬가지야. 계속 흑으로 둬보라고.”
그 후 민혁은 남자의 스네이크 변칙 오프닝을 모두 받아치고 3판 연속 승리 했다.
“...”
3번째 패배를 확인한 후 남자는 한동안 아무말 없이 오델로 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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