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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7/03/2017 18:50 in 오델로, 에세이, 프로, 품격

에세이 - 프로의 품격

프로의 품격

태국의 한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친구와 둘이 골프장을 찾은 저는 인원이 모자란 관계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라운딩을 해야 했습니다. 티 박스에는 이미 여대생 정도 나이로 보이는 여자 한명과 중년의 남자가 서있었습니다. 생초보인 저에게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는 일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것이어서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걱정도 잠시,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우리를 본 여자가 돌연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호쾌하게 영어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면서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남자들이 치는 지점에서 첫 샷을 날리더니 계속해서 완벽한 샷을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생초보의 눈에는 정말이지 그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들이 치는 곳에서 여자가, 그것도 저렇게나 정확히 칠 수 있다니...!'

반면 그녀의 완벽하고 거침없는 플레이에 비해 왕초보인 저의 플레이는 아주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계속 공을 맞히지 못했던데다가 어쩌다 공을 맞혀도 잘못 맞히는 바람에 이상한 곳으로 가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저렇게 잘 치는 사람이 내 플레이를 보고 얼마나 비웃을까 생각하니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저를 비웃기는 커녕 제가 제대로 된 샷을 칠 때까지 옆에서 계속 지켜봐주다가 제 공이 앞으로 나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저 멀리 있는 자신의 공쪽으로 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 공이 앞으로 나아가면 '오케이!'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공이 엉뚱한 곳에 떨어져 허둥지둥 공을 찾고 있는데 그녀가 제 쪽으로 와서 같이 찾아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나 잘 치는 사람이 왕초보인 저를 성심껏 도와주려 하는 모습이 정말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보통의 경우 초보 한명 때문에 플레이가 지연되는 것에 짜증을 내비치거나, 제가 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자기 공을 치거나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9홀을 돌고나서 휴식 시간에 그 두사람과 대화를 해본 우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인 부녀지간이었고 특히 그녀는 현역 투어 프로 골퍼였던 것입니다.

'그랬구나. 그래서 왕초보인 나에게까지 프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것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절로 존경심이 생기면서 프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매우 거대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진중하게 플레이 하는 자세,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 뜨거운 날씨에도 잃지 않는 밝은 모습 등은 저로 하여금 그녀가 골프를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가르침을 주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몸소 수백마디로도 설명하기 힘든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조훈현9단도 스승인 세고에9단의 내제자 시절, 스승으로부터 바둑의 기술적인 것은 전혀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함께 지내면서 먼발치에서 스승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바둑을 대하는지를 바라본 그것이 가르침의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기술적인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을 대하는 자세와 생활태도, 마음가짐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품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평생 일인자가 될 수 없다"라는 세고에 선생의 신념은 세대가 훌쩍 지난 지금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잘하고 싶은 어떤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기술적인 측면을 연마하고 공부합니다. 기량이 뒷받침 되지 않은 전문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력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전문가가 될 수 있을는지는 의문입니다. 그 대상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태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어떤 가르침이 될 수 있어야 전문가라고 불리울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비록 세계적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왕초보에게 몸소 골프에 대한 커다란 가르침을 준 그 여류골퍼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그녀는 세상 어디에선가 골프에 대한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을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녀는 제게 프로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었고, 그것이 단순히 기량적인 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훗날 TV 중계에서 탑 랭커가 된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스승과 재회한 제자와 같은 마음으로 반갑게 응원을 하겠지요.

18홀을 다 돈 후 함께 사진 찍자는 제안에 '노메이크업인데 괜찮겠냐'며 활짝 웃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2017. 7. 1,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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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델로 소설가, 공인 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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