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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1/18/2016 02:40 in 오델로, 세계대회, 참가기

볼짱의 세계대회 참가기 (1)

살면서 세계대회라고 이름 붙여진 곳을 참가할 기회를 갖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이 세계대회 참가지 국가대표라는 말이 되는 것 아닌가.

이제 막 초짜를 벗어난, 아니 아직까지도 초짜일 수도 있는 내게 국가대표라는 수식어는 영광스러우면서도 버겁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내린 참가 결정이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세계대회를 참가할 자격이 있기는 한걸까,라는 자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영국에 도착했다.

2015년 오델로 세계대회는 영국 런던이 아니라 캠브리지였다. 익히 알고 있듯 캠브리지는 런던에서 두어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대학 도시다. 대학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착했을 때부터 무언가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차분한 연구원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곳이었다.

영국은 산이 없기 때문에 도착했을 때부터 파랗게 펼쳐진 잔디와 공원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무언가 눈이 평온해지는 그런 풍경들이 많은 곳, 캠브리지의 여정은 그렇게 조용하게 시작됐다.

히드로 공항에서 몇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캠브리지였지만 숙소인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서 바로 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바로 전야제 행사가 있었기 때문인데 경기장에 가서 선수 등록을 하고 간단한 선수 소개와 함께 1라운드 대진 추첨을 해야 했던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 앞은 이렇게 고풍스러운 유럽형 집들과 신호등, 교차로의 풍경이었다. 이 때부터 내가 영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경기장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멀다면 먼 거리인데다가 초행길이어서 잘 찾아가는 것이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친절한 영국 모녀의 도움으로 (그들은 우리가 지도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자 다가와서 도움을 자청했다) 어려웠지만 다행히 경기장을 찾아갈 수 있었다. 걸어가는 도중 보이는 건물들은 영화에서나 보던 옛스러운 건물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머리는 대회에 대한 이런 저런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눈만큼은 호강을 했던 것 같다.

대회장은 이름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투박한 모양을 가진 무슨무슨 센터였다. 으리번쩍한 곳에서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내심 기대도 했었지만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랴.

이곳에서 이틀간 박터지는 13라운드를 치룰 생각을 하니 발바닥 저 밑에서부터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 대회전의 긴장이란 이런 것인가.

행사장에 도착하니 한켠에 트로피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전 상위 입상자와 여류 입상자, 단체(국가) 상위 입상국에게 돌아갈 것들이다. 저 트로피가 내것이라고 호언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세계에 몇 명이냐 되겠냐마는, 우리나라가 저 단체전 트로피를 거머쥘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1라운드 추첨을 마치면 전야제도 종료된다. 그 전에 각국의 선수들은 기념촬영도 하고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긴장을 푼다. 일본 선수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들 사진을 한 장 찍지 않을 수 없었는데 네임밸류로 보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4년 챔피언 스에쿠니, 세계랭킹 1위 타카나시, 그리고 과거 오델로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이토, 여류 최강으로 꼽히는 요코(그녀는 미국 대표로 출전하기는 했다. 일본대회 미국대회 다 출전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여류 강자 후나츠.

우리가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할 것이다. 아직은 어림 없지만 향후 대등한 기량을 겨룰 수 있는 실력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평생 그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목표는 그렇게 잡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협회장과 함께 스에쿠니와 사진을 찍었다. 스에쿠니는 무언가 활달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2014년 태국 대회때 참가한 한국의 어린 선수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학생들은 여전히 오델로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 근황을 묻더라. 무언가 그 때 강렬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후에 들은 얘기인데 그 당시 참가 어린이 중 한명의 어머니가 일어에 능통해서 스에쿠니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1라운드에서 당신을 안만났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번역기를 돌려서 보여줬더니 파안대소를 했다. 그 때 그에게 한국은 어떤 이미지였을까. 오델로 강국의 이미지로 각인시켜주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나는 속으로 얘기했다. '저보다 쎈 한국의 우리 동료들이 곧 당신을 꺾을 것입니다.'

1라운드 추첨을 하기 전에 시디드 플레이어들을 호명한 뒤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한번이라도 4강 안에 든 전력이 있는 사람이 시디드 플레이어가 되고 그들은 서로 1라운드에서 만나지 않게 먼저 추첨을 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모여 있는 이 사진은 현재 오델로 세계 탑 랭커들의 한 장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밴, 삐야낫, 니키, 타카나시, 보라시, 마티아스, 카시와바라, 스에쿠니, 리더.

사실 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바라봤을 때 무슨 탑 연예인들을 보는 것처럼 입이 떡 벌어졌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코앞에 서있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저들이 나와 같은 선수라기보다는 구름 위의 신선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면 지나친 자신감 결여가 되려나. 하지만 정말로 그런 느낌이었다.

시디드 플레이어들이 번호를 뽑고 나서 나머지 선수들이 추첨을 하는데 운이 없으면(사실 뭐가 운인지도 모르겠지만) 시디드 플레이어들이랑 붙고 아니면 그나마 강자는 피해갈 수 있었다.

내 앞에 뽑은 선수들이 시디드 플레이어들과 많이 매치가 되는 바람에 나는 상대적으로 탑 클래스들이랑 붙을 확률은 떨어진 상태에서 추첨에 들어갔다.

보기에 따라서는 탑 랭커들과 붙는 경험을 하려면 오히려 1라운드에서 붙기를 바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첫판부터 지고 시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사실은 더 컸었다.

어찌됐든 나는 랭킹이 높지 않은 프랑스 여류랑 1라운드를 치르게 되었다.

승산이 있는 상대라는 것에 일단 안도를 했지만, 행여 그런데도 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했던 것 같다. 상대가 유명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자기 전에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까지는 없겠지 하며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꿈에도 모른 채.

-계속-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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