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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영 4단 wrote this on 08/29/2017 20:21 in 인천오픈, 오델로, 대회, 후기

2017 제 1회 인천 오델로 오픈 대국 후기

제 1회 인천 오델로 오픈 대국 후기

Round 1

이춘애 初단  흑 - 백  소재영 四단

opponent's W.R : 1818

오프닝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다가,  아마도 후반쯤에 악수를 두신 듯 하고 그 뒤로 기회를 잡아 승리했다. 복기는 하지 못했다. 오프닝은 Sailboat였다. Tanida류의 오프닝은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것에 비해 Sailboat는 내가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춘애 初단  29 - 35  소재영 四단


Round 2

소재영 四단  흑 - 백  Asahina Satoshi 四단 

opponent's W.R : 2148

오프닝을 상대가 노쿵으로 받았다. 나는 대회 직전까지 나만의 노쿵 길을 준비해 놓은 게 있었는데, 마지막에 그 오프닝이 영 별로인 것 같아서 하루 전 날에 오프닝을 바꿨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준비가 덜 된 노쿵 -2길로 가게 되었다. 이 오프닝은 벤 실리가 리버시워에서 자주 쓰는 것을 보고 벤치마킹한 것으로, Ben Seeley's No-Kung이라고 스스로 부르는 길이다. 처음에만 좀 봤고, 이 오프닝의 반전 포인트 같은 것을 잘 몰라서 불안했으나 최선을 다해서 둬보자는 마음으로 대국에 임했다.

참고로 이 아사히나 사토시라는 선수는, 내가 한 수를 둘 때마다 끄덕끄덕 거리는 습관(습관인지 작전인지 모르겠으나)이 있었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괴로운 표정을 짓다가 착수를 하고는 했다. 이런 상대방의 작은 리액션이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갑자기 상대방이 끄덕거리지 않으면 ‘아, 내가 이상한 수를 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도 다 경험인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든 차분하게 판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아직 나에게 부족하다.

이 오프닝은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오프닝이라 나도 어려웠고, 상대도 이 오프닝을 잘 모르는 듯, 초반부터 고민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서로 그렇게 나쁜 수를 두지는 않는 무난한 진행으로 아래 그림과 같은 상황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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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의 내 승리 전략은 a2 착수를 통해 상변을 먹고 h4의 상대가 못 들어가는 공간을 최대한 살려서 이겨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h6이 눈에 들어왔고, h6- h7 이후 a2를 찔러서 상변과 우변을 싹 먹으려는 생각으로 h6에 착수했다. 그러나 바보같이 상대가 h7둘 때 C라인이 올 백이 되어 b1을 착수하지 못하는 것을 간과한, 악수였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들을 할 때마다 멘탈에 조금씩 흠집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흠집은 이 곳이었다. 역시 월드 레이팅 2100대의 선수답게, 그는 이 실수를 놓치지 않았고 이후로 내가 쭉 끌려갔다. 그러다가 상대방도 나도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로 엔딩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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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에 돌연 상대방이 그림과 같이 c7로 -4 수를 밟아줬다. 이 때 나에게 남은 시간은 약 1분. 수읽기를 할 시간도 부족했고 자칫하면 돌을 넘기다가 게임이 끝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제대로 수를 보기 힘들었다. 이 전에 내가 출전했던 대회에서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번에는 두 판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을 거의 전부 쓰면서 둔 것 같다. 따라서 바로 눈에 들어오는 h1을 착수했다. 내가 그 곳을 둘 때 상대방도, 아! 하는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그 곳은 아껴뒀다가 좌하에서 백의 운신의 폭을 줄인 뒤에 뒀어야 하는, 이용 가치가 아직 남아 있는 수였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승리의 기회를 놓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2라운드는 패배했다.

Shimax로 복기를 해보면서 깨달은 점은, 상대방이 월드 레이팅 2148점의 상수였으나 수읽기가 나와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상대가 잘 모르는 오프닝으로 가자 수가 흔들리는 모습을 초반에 보여주었다. 물론 그는 많은 경험과 탄탄한 기본기를 갖고 있는 선수였기에, 내가 한 번 실수한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우위를 점해 나갔고, 막판 시간 압박에 의한 실수를 했지만 나도 시간이 없었기에 보지 못하고 그렇게 대국은 종료됐다. 시간 관리의 필요성을 배운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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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영 四단  28 - 36  Asahina Satoshi 四단 


Round 3

Piamrat Kraikokit 흑 - 백  소재영 四단

opponent's W.R : 2029

이번 대회에서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눈 태국 오델로협회 협회장 크라이코킷과의 대국이다. 처음에 협회장이 온다고 해서 나이가 꽤 많은 아저씨를 상상했으나 그는 30살의 친구 같은 형이었다. 태국어의 악센트가 강하긴 하지만 영어를 꽤 잘한다. 그도 영어가 안 통하는 일본인들보다는 나와 범근이와 함께 있는게 더 편했는지, 식사 때마다 계속 같이 있었다.

오프닝은 평소 애용하는 타니다 변형 -2길. 크라이코킷은 자신이 오프닝 공부를 예전에는 열심히 했었는데 요즘에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느껴서 잘 안 하고 랜덤하게 둔다고 말했었는데, 사실인 듯하다. 이 정도는 암기하고 있겠지~ 하고 생각한 부분에서도 최선수를 두지 않았고, 다행히 여러 갈래의 진행을 다 봐두었기에 내가 파놓은 함정으로 잘 끌어들여서 무난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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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쭉 내가 유리한 상태로 진행이 되어 어느덧 +14정도의 차이가 났다. 계속 빠르게 두던 내가 처음으로 장고한 곳은 이 곳. 처음에는 a6을 두고 변을 단단히 고정한 후 패리티를 이용한 무난한 수순을 봤다. 그러다가, 3행 돌을 모두 흰색으로 만들어 상대의 h3 착수를 막으면서 동시에 g5돌을 빼내어 상대의 e7착수를 막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에 들어온 수가 h6. h4도 비슷한 의의가 있어서 좋아보였고 무난한 a6도 확실히 굳히기에 적절한 좋은 수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한 번 나의 수읽기가 생각한대로 되는가를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이미 내가 유리한 상태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무난하고 확실한 굳히기 수를 두는 것과, 이후의 진행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결정적인 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수 사이에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고민을 했다. 그동안 렘님과 트레이닝을 하면서 자주 들은 지적이 “무난한 수를 너무 좋아 한다”는 것이었다. 가끔은 어려워 보여도 결정적인 수를 두어야 할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시던 렘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 그리고 살짝 악수를 둬도 왠지 이길 수는 있는 상황 같아서 반신반의하며 h6을 두었다.

두고 나자, 상대가 h4로 받으면 이 수는 악수가 된다는 것이 바로 보였다.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도 침착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게임에 다시 집중했다. 그렇게 상대가 살짝 유리한 채로 흘러가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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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h7의 대실수를 해주었다. 복기해보면서 그도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그도 저 수로 멘탈이 흔들렸는지, 이 후로 갈수록 더더욱 악수를 가주었고 나의 큰 승리로 끝이 났다.

승리하긴 했지만, "장고 끝의 악수"를 둔 판이라서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판은  "무난하게 두는 것이 좋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후 대국들에서 번뜩이는 수들을 보고도 그냥 무난한 수를 선택하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3라운드가 끝나고 맛있는 점심시간. 점심도 크라이코킷과 함께 먹었는데 현재까지 자기는 한국인만 3명 만났다고 했다. 협회장님 렘님 그리고 나. 나는 그에게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강한 3명을 모두 만난 것이다!” 는 너스레를 떨며 즐겁게 점심시간을 보냈다. 이 때까지는 이번 대회에서 꽤나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둘 것이라 스스로 예상했다. 그러나 4라운드부터 나의 ‘멘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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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mrat Kraikokit 6 - 58  소재영 四단


Round 4

소재영 四단 흑 - 백 Nakamori Hiroki 六단

opponent's W.R : 2254

비록 졌지만 경기 내용은 꽤나 만족스러운 대국이었다. 상대는 월드 레이팅 2250점대의 고수. 그러나 내가 준비한 스네이크-5길을 그대로 잘 따라와 주었고, 중후반까지 시종일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쯤 되자 상대도 게임이 힘들어진 것을 느꼈는지 한 수 한 수에 많은 시간을 쓰면서 계속해서 "시로 쿠로 시로 쿠로...."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은 후 다시 “시로 쿠로 시로...”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정도의 고수까지는 긴장하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더불어 내가 준비한 변칙 오프닝이 꽤나 상수에게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준 대국이기에 내심 기뻤고 앞으로도 이렇게 준비해 나가면 되겠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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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e6으로 가는 것이 내가 준비한 오프닝이었다. 이건 스네이크를 걸었을 때 백이 대처 가능한 여러 갈래의 길에 대해 공부하던 중에 내가 판단을 실수해서 한 번 ‘리버시 워’에서 우연한 계기로 가게 된 오프닝인데, 복기해보니 써보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하여 연구하게 되었다. 실전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e6을 착수했고, 그 때 상대방의 얼굴을 스치는 그 당혹감을 난 분명하게 보았다. 역시 오프닝은 틀어야 제 맛이다. 저 이후로 백이 고맙게도 최선수를 차근차근 밟아 주었고, 서서히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기사들의 한 가지 좋은 점은, 어느 상황에서든 일부러 트는 일이 별로 없고, 최선수를 두려는 경향이 매우 짙다는 것이다. 가끔은 최선수를 알더라고 상대방이 의도한 수대로 가주지 않는 차선 혹은 차차선 수가 더 좋을 때도 많은데, 유독 일본인들은 그러지 않는 듯하다. 그것이 그들의 약점이고 내가 공략해 나가야 할 포인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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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국에서 나의 첫 번째 장고는 37수 째였다. 이 전 상황까지 나는 거의 완벽하게 최선수만을 밟아 나갔고, -5로 시작된 대국은 어느덧 +6이 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고민한 후보수는 b8과 c6. 처음에 눈에 들어온 수는 c6이었다. c5~g1으로 이어지는 C라인을 살리면서 동시에 6행을 올 블랙으로 만들어서 백의 b6 착수를 막는 매력적인 수로 보였다. 그러나 상대가 h6에 들어간 뒤,  쭈욱 길게 먹는 수로 b6에 들어올 수 있고 또 상대가 h6을 두면 내가 h5로 받아야하는데 그러면 우상귀와 변의 모양이 상당히 껄끄럽다는 결론에 도달, 그렇다면 f4 돌을 빼서 상대의 h6 착수마저 막는 수, 그리고 c6보다 얇게 먹으면서 수를 아껴주는 수가 무엇인가 보니 b8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결국 잘 찾아갔다. 그렇게 대국이 진행되어 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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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번 더 고민을 했다. 무난해 보이는 h5와, 수순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느낌이 확 오는 g8. e8의 유리한 공간을 십분 활용하고 판의 좌측 쪽이 백에게 완전히 경직되어있는 상황이라 상당히 끌렸다. 그러나 크라이코킷과의 대국에서 학습한 것이 마음속에 남아서 이 상황에서 g8을 치열하게 수읽기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 버렸다. 원래 같으면 전 판에 내가 그랬듯 장고를 하며 g8을 어떻게든 읽고 엮어 나가 보려고 노력했겠지만, 장고 끝의 악수를 한 번 경험한 뒤라서 나는 “에이 이번에는 그냥 무난하게 가져가자”는 생각에 빠르게 도달했고 h5에 착수했다. 대국이 끝난 후 복기를 할 때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이 그 곳을 짚으며 거기를 둘까봐 걱정했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다행히 상대가 그 뒤 바로 -4를 받아서 계속해서 유리한 채로 대국을 이어 갈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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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태가 계속 진행되었고 이제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20분이 상당히 짧게 느껴졌다. 만약 30분 룰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시간의 적절한 분배가 아주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전 대회들보다 조금 더 수를 신경 써서 두다보니 전반적으로 시간을 많이 쓴 것 같다. 이제 수를 깊게 생각하면서도 시간 분배를 적절히 해서 엔딩에서 쓸 시간을 최소 5분은 남겨놓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다.

어쨌든, 여기에서 나의 승리 전략은 b7 엑스를 찔러서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좌하의 공간이 5칸이었고 우하의 5칸은 백에게 불리한 모양이었기에 좌하의 5칸에서 승부를 보려는 생각이었다.  사실 여기서 최선의 길은 백의 좌변을 unbalanced하게 만든 후 우상 코너 진출 뒤b2를 찔러서 상변 좌변을 먹고, e8 공간의 우위를 활용, 패리티 혹은 굳힘돌을 더 먹는 진행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계속 우하 5칸을 이용한 승리 전략만을 머릿속에 그린 채 대국을 진행해왔고, 그 때문에 또 다른 승리전략이자 최선의 전략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a6을 간과하고 말았다. 대국의 초중반부터 승리 전략을 그려가며 두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엔딩에 와서 그 전략이 과연 가장 좋은가를 다시 점검해보고 더 좋은 전략이 있는지 한 번 생각을 refresh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도 결론적으로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그렇게까지 생각을 되돌려볼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결국에는 시간 관리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직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오프닝 연구를 많이 할수록 초반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그것이 시간 관리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대한 a4와 a6 공간에 끼워 들어가서 돌을 많이 먹는 작전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있었던 나는 저 상황에서 b7에 착수했고, 결론적으로 패배를 안겨준 악수였다. 시종일관 유리했던 게임은 이렇게 한 방에 무너졌다. 그러나 그 수가 악수였긴 했지만 워낙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었기에, 상대방도 b7 이후에 굉장히 오래 장고를 하며 돌을 끊임없이 카운팅해야만 하는 상황이 연출됐고, 어느덧 차이는 -2까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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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서 상대방에게는 시간이 30초 정도 남았고, 나는 이 상황에서 약 12초 정도를 갖고 있었다. 수읽기고 뭐고, 그냥 돌 뒤집다가 끝날지도 모를 만큼 촉박한 시간이었다. 상대방도 시간이 없자 자세히 보지 못하고 h7에 두는 실수를 했다. 나에게는 정말 마지막 기회가 온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7라운드에서 타츠미 유키코 6단에게 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모양의 변 처리 실수였다. 이게 좀 더 보기 힘든 모양임에는 틀림없지만 나에게 1분의 시간만 있었어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정말 많이 아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12초라는 사실상 아무 수읽기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플 12 길은 찾기 어려웠고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놨던 곳으로 손을 가져갔고 -4로 대국은 끝이 났다. 나카모리 히로키 6단이 끝나고 복기를 하면서 자기가 -12를 둔 것에 대해 미안함을 자꾸 표현했는데, ‘경기의 전체적인 질을 떨어뜨리는 수를 둔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승패와 상관없이 서로 좋은 수를 주고받는 양질의 대국을 펼쳐야한다는 마인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는 협회장님도 잘 두는 사람인지, 누구인지 몰랐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한 상태로 경기에 참가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전혀 없었을 것이고, 무명의 한국 선수에게 생각 외로 고전하자 적잖이 놀란 듯 한 눈치였다. "good game"과 “very strong”이라고 말하며 거듭 칭찬해주었지만 그만큼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다. 그러나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 고수에게 통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자신감을 갖게 해준 판이었다. 물론 그 진한 아쉬움이 멘탈적인 부담으로 작용했고, 전판의 미련이 자꾸만 떠오르고 잔상으로 남아 결국 이후의 대국에 악영향을 미쳤다. 또한 체력적으로도 4라운드 게임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느낌이 강했기에 5라운드부터는 지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한 일련의 결과들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5라운드는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는 졸전을 펼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4라운드까지의 경험은 나에게 “시간 관리”, “심리적인 평정심”, “체력과 집중력의 유지”라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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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영 四단 30 - 34  Nakamori Hiroki 六단


Round 5

소재영 四단 흑 - 백 Takahashi Hisashi

opponent's W.R : 2019

이 대국은 7라운드 전체에서 가장 졸전을 펼친 대국이었다. 평정심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 판이었다. 상대가 아무래도 유일한 무단자 일본인인 만큼 수읽기가 다른 일본 유단자들과는 다르게 조금 투박한 느낌이었고, 초반에 내가 준비해온 스네이크 길의 함정에 대놓고 빠져서 20수 무렵에 이미 게임이 완전히 기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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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네이크 변칙(-4) 오프닝은 최선수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곳은 수치와 무관하게 백에게 불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스승인 렘님에게 처음에 당하고는 크게 놀랐던 오프닝이다. 그런데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상대방은 e3이라는 가장 큰 함정에 덜컥 걸려들었다. e3-d7 이후에 세 가지 갈래의 진행이 나오는데 다행히도 내가 모두 연구를 마친 길이라서 상대방에게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 판을 쉽게 가져가는 듯 보였다.

오른쪽 그림의 상황에 이르면 대부분의 경우에 이미 승패가 판가름 나 회복이 힘들기 마련이다. “이걸 진다고?”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모양. 무난하게 이대로 유지만 해도 승리하는 판이었으나, 4라운드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전 판들의 아쉬웠던 순간들이 잔상처럼 머릿속에 남아, 수읽기를 차분하게 하기 힘들었다. 수읽기가 잘 안 된다는 것은 곧, 돌의 뒤집히는 모양들이 선명하게 시각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f8을 후보수로 놓고 생각하던 당시 내 생각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f8 - e8일 때 e6 돌이 하얀 색으로 변한다는 단순한 두 수 읽기 조차 제대로 못했다. e6 돌이 검게 남는다고 착각한 나는 f8이 별로라는 결론은 내렸고, 결국 대국을 아예 끝내 버리는 결정타인 f8을 두지 않고 g5라는 ‘약한 수’를 두어 상대방에게 살아날 여지를 남겨 주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매 상황마다 차선 혹은 차차선 수를 두며 조금씩 수치를 깎아 먹었고, 나의 흐트러진 멘탈을 대변하는듯한 결정적인 악수 한 방으로 유리했던 대국은 어느새 나에게 불리하게 바뀌어 있었다. 유리했던 대국일수록 그 유리한 흐름이 한 번 바뀌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망가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미 멘탈이 많이 흔들려 있던 나는 대국이 산으로 가자 점점 더 심각한 수를 두기 시작했고 종국에 와서는 매우 큰 차이로 망한 판이 되어 있었다. 대국을 수치 분석해보면 max와 min의 차이가 40을 넘나드는, 민망할 정도로 못 둔 대국을 만들며 나의 5라운드는 그렇게 허무하게 패배로 끝이 났다.

이 대국에서는 ‘평정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렘님이 대국 후에 “멘탈좀 잡아봐요 멘탈좀~” 이라며 아쉬워 하셨다. 평소에도 나의 단점을 지적하실 때 종종 멘탈이 약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그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 대국이었다. 씁쓸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쉬는 시간에 물을 연거푸 들이키며 평정심을 찾자고 여러 번 다짐을 한 후 다음 라운드에 돌입했다. 그래도 2연패 했으니 이제는 조금 수월한 상대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페어링 상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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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영 四단 24 - 40 Takahashi Hisashi


Round 6

소재영 四단 흑 - 백 김동성 初단

opponent's W.R : Unrated

(복기가 서툴러서, 다음 날 복기를 해보니 아무리 해봐도 49가 아니라 48이 나온다. 실전에서 돌 하나를 잘 못 뒤집었을 가능성이 있다.)

쓰디 쓴 2연패 후 테이블에 앉았다. 내 앞에는 오늘 처음 뵙는 중년의 한국인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평소에 어디서 오델로를 두셨냐고 물었더니 'PlayOK'에서 종종 두셨다고 했고, 오프라인 대회는 거의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번 판은 쉽게 이기겠거니 생각했고, 긴장이 살짝 풀린 채 대국이 시작됐다. (후기를 쓰면서 뒤늦게 이 분이 과거 입단 대회 우승과 전국 선수권 대회 3위를 한 전적이 있는 초단 분임을 알게 되었다.)

오프닝은 컴오쓰로 받아 주셨고, 나는 그동안 고수를 만나면 쓰려고 연습해왔던 컴오쓰 -2길을 선택했다. 초반부터 큰 차이로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 분은 척척 그리 나쁘지 않은 대응을 하며 대국을 비등하게 이어 나갔다. 이 판은 쉬어 가는 느낌으로 앉아서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장시간 서 있느라 고생한 허리를 쉬게 해주고 있던 나는, 중반에 접어들 때쯤 ‘아, 이 분 그렇게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 전국 선수권 대회 때 홍형범님에게 느슨한 마인드로 앉아서 대충 두다가 충격의 패배를 당한 기억이 번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즉시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일어나, 집중해서 수읽기를 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누구든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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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여기 까지는 정말 비등비등하게 잘 유지되어 오다가, 여기에서 김동성님이 h4라는 악수를 밟으셨고, 그 이후로는 우하귀와 좌상귀에서 모두 란다우가 나왔고 큰 차이로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카모리 히로키와의 대국에서 내가 b7을 둔 것이 아마 그에게는 지금 이 상황에서 h4를 두는 것처럼 (이것보다는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보였을 것이다. 역시 오델로는 ‘잘 둬서 이기는’ 게임이라기보다는 ‘못 둬서 지는’ 게임이다. 이런 단 한 수의 악수를 걸러내는 시각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수 백 수 천 판의 노력과 연구,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대국이 끝난 후 디너파티 때 다른 테이블에 앉아 계시다가 찾아오셔서 악수와 함께 오늘 정말 잘 배우고 간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셨다. 앞으로도 김동성 님처럼 과거 활동하셨던 분들을 오프 대회나 모임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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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영 四단 49 - 15 김동성 初단


Round 7

Tatsumi Yukiko 六단 흑 - 백 소재영 四단

opponent's W.R : 2085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까지 왔다. 상대방은 최근에 전일본대회(?) 여류 준우승을 했다고 얼핏 들었던 어떤 아줌마였다. 6라운드에서 렘님이 이 분과 붙었는데, 마이너스 십 몇으로 끌려가다가 마지막에 실수를 해서 간신히 이겼다며, 매우 강하다고 말씀 해주셨다. 무척 긴장이 됐고 이제는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쳤지만, 4승은 꼭 하고 싶었기에 결의를 불태우며 대국에 임했다.

다행히도,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Tanida 변형 길을, 상대방은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꾸역꾸역 최선수로 따라와 주었다. 사실 이 길은 최선수로 안 와줄 가능성이 매우 많고 여러 가지 갈래로 갈라질 수 있는 오프닝이라 준비할 때 좀 힘들었는데, 한 수 한 수 매우 골똘히 오래 고민하면서 최선수를 짚어 나가는 것을 보며 속으로 기쁘면서도 상대방의 수읽기 능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상대방에게 심리적으로 더욱 압박을 가하기 위하여, 한 2분을 고민해서 둔 수 (대응 수는 이미 외워놓은 상태)에 노타임으로 바로 두는 식으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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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그림의 상황인 30수 진행(f7)까지 나는 모두 외운 상태였기 때문에, 노타임으로 둬서 시간이 17분 정도 남았고, 상대방은 8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이 오프닝의 핵심이 바로 이 곳. 여기서 흑의 최선수는 이 길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쉽게 두기 힘든 모양이며, 다른 곳으로 가면 백에게 확 유리해지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최선수를 잘 찾아가던 상대방도 여기서는 f2를 찾지 못하고 g8에 착수했다. 난 곧바로 b7로 대응했고, 여기서부터 흑은 쭉쭉 마이너스로 빠지기 시작했다. 5라운드에서 다카하시에게 아주 유리한 판에서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한 기억을 되살리며, 속으로 매우 기뻤지만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이 판만큼은 이기자는 생각으로 최대한 신중하게 돌을 뒤집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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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국은 중반을 넘어 엔딩을 향해 나아갔고, 중반에서 나의 ‘무난한 승리를 위한 소극적인 수’들 때문에 +14까지 갔던 수치는 +8으로 줄어든 상태로 엔딩으로 넘어갔다. 단 한 번도 우위를 뺏기지 않고 그래도 잘 왔다. 위 그림의 상황에서 나에게 시간은 약 10분 남아있었고 상대방에게는 2분 정도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었다. 이제는 시간적으로도 상대에게 매우 압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여기서 흑이 좌상의 a2에 착수하는 것이 신경 쓰여서 얼른 저 곳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사실 조금 더 호흡을 가다듬고 판을 멀리 본다면 상대방이 좌상귀 3칸에 먼저 들어오더라도 다른 공간에서 패리티를 이용하여 우변과 상변을 먼저 연결시킨 후 마지막에 좌상귀를 처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이유에선지 하나의 수읽기만을 고집했고, 내가 좌상 코너를 먹고 상변을 주고 대신 2행을 먹어서 화이트 라인을 지켜나가는 그림만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릴 뿐, 다른 진행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그래서 얼른 좌상귀에 착수해야겠다는 생각에 흑의 수를 강제하는 e8을 둔 후 곧바로 a1으로 향했다. 물론 나쁜 진행은 아니지만, +8에서 +6으로 가는 약한 수였다. 또한, 너무 같은 그림만을 계속해서 그리면서 둔 탓인지, 종반에 이르자 체력적 한계가 오면서 뒤집히는 돌의 시각화가 잘 안 되고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과부하 걸려서 사고 회로가 좀 뻑뻑해진 느낌이랄까. 이제는 돌을 세어야할 것 같아서, 돌을 세어 보려 했지만 역시나 머리가 굳어서 숫자가 잘 세어지지 않았다. 뭔가 느낌이 쎄했지만 그래도 생각대로 대국이 흘러가 완전 종반에 이르렀고 여전히 수치는 +6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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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망의 5칸. 지금 후기를 작성하기 위해 이 그림을 가져와서 보자마자 또다시 속이 쓰려온다. 아아.....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여기서 h2를 둔 것일까. 곰곰이 또 곰곰이 당시의 내 사고 과정을 떠올리고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당시의 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도 안 되게 당연한 g2 착수를 아예 후보수에도 올려놓지 않았던 것 같다. 아예, 저 곳이 내가 둘 수 있는 곳인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리고 h2를 둘 때 상대가 h3으로 두면서 내가 g2를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당연한 두 수 읽기조차 나는 하지 못했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왜 그랬을까. 볼짱님의 말씀대로 ‘패신(敗神)이 들렸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의 체력적 한계, 집중력 저하, 전 판들의 실수들로 인해 누적된 멘탈 데미지 등등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결과물로 구현된 것이 바로 이 h2 착수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시종일관 유리했던 이 대국은,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실수로 인해 패배가 되었고, 상대방인 타쯔미 아줌마는 기쁜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아리가또”를 연발하며 즐거워했다. 나의 돌처럼 굳어버린 표정을 보고도 어떻게 저렇게 순수하게 깔깔댈 수 있는지 그 순간 정말 얄미웠다. 사실 지금도 분이 다 풀리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고, 이미 결과는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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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sumi Yukiko 六단 35 - 29 소재영 四단


그렇게 나의 7라운드는 모두 끝이 났고, 아쉬움만을 한 가득 간직한 채 나는 대회장을 나와야 했다. 이렇게 후기를 작성하는 이유는, 이 아쉬움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이것을 이대로 간직한 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고 내가 배우고 고쳐 나가야 할 점들을 스스로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예전에 홍형범님에게 패했던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인드로 그냥저냥 잊혀 보내 버렸었는데, 이번에는 이 아쉬움을 지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한 단계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고 싶어서 이렇게 긴 글을 써 보았다. 아쉬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내가 준비한 오프닝들을 꽤 고수인 기사들에게 써먹어 보았고, 결과적으로 모두 통했다. 즉, 내가 지향하는 오델로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도 이 길로 쭉 나아가면 된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1. 시간관리. 오프닝 공부와 직관을 키워서 초반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
  2. 멘탈관리. 아쉬운 장면을 잊고 현재 대국에 집중하기. 정말 어렵겠지만 잊어야한다.
  3. 상대방의 리액션, 제스쳐에 신경 쓰지 않기. 오직 판만 바라보기.
  4. 체력과 집중력의 유지. 이것은 오프 대회에 자주 나오면 해결될 수 있겠다.
  5.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수를 읽기.

마지막으로 인천 오델로 오픈이라는, 한국 오델로 역사에 길이 남을 소중하고 뜻 깊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이춘애 초단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8월 28일 소재영 四단 씀.

소재영 4단

오델로 기사, 공인 四단, 초대 오델로 왕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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