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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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7/13/2015 in 오델로, 소설, X-square, 독사

독사 (4)

“... 졌다. 나의 완패다. 일찍이 이렇게 한 상대에게 3연속 패배를 당한건 정말 기억도 안나네. 우리나라에 이런 고수가 있다니 놀랍군. 흐흐”

“뭐야 아까는 나한테 행패를 부리더니만 3판 지고 나니 얌전한 고양이가 됐네.”

현서가 입을 비죽거리면서 얘기하자 지수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당신이 왜 나를 이길 수 없는지 알겠나?”

민혁의 단호한 물음에 남자는 아무말 없이 눈만 껌뻑이며 민혁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이기는데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스네이크 오프닝을 연구한 것도 상대를 일찌감치 곤경에 빠뜨리고 쉽게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서였겠지 하지만.”

민혁은 아이를 훈계하는 선생님처럼 매섭게 말했다.

“승부라는 것이 본래 승리든 패배든 거기에 타성이 붙어버리면 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쉽거든. 당신의 스네이크는 물론 훌륭하지만 완벽하게 알고 있다 여기고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봐야할 것 같네.”

“...”

남자는 민혁의 말을 듣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상대가 걸려들었을거야... 꽤 쎄긴 하더군. 사실은 나도 하마터면 골로 갈뻔 했지.”

“...이제 얘기해줄 수 있겠나. 왜 오델로 고수들을 찾아 그토록 헤매고 다니는지.”

민혁이 묻자 남자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기... 아줌마 여기 물 한잔 마실 수 있겠소?”

“캭! 저 인간 아줌마라니! 물을 떠다가 얼굴에 확 부어버릴까보다!”

“킥킥킥. 내가 가져다줄게요.”

현서가 건넨 물한컵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남자가 어렵사리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겐... 막내 삼촌이 한분 계셨다. 그 분은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지. 오델로 고수였거든”

“유치원을 다녀오면 늘 내게 오델로를 가르쳐주고 둬주면서 나와 함께 놀아주셨지... 함께 놀러도 다니고 말야”

말을 이어가는 남자의 눈이 점점 선한 빛으로 바뀌어 갔다.

“고수라면 어느 정도... 당신이 어렸을 때라면 한국 오델로가 아무래도 저변이 좁았을텐데...”

질문을 던지는 지수를 쳐다보던 남자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 내가 말을 안했군.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은 일본에 살았었다. 삼촌은 그러니까 일본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는 수준이었단 말이지... 그 정도면 고수 맞나?”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민혁을 보며 남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왔는데 삼촌이 보이질 않는거야. 늘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아줬던 삼촌이 안보이던 날 상심한 나는 삼촌 방안에서 꽤 오랜 시간 쭈그려 앉아있었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온 삼촌은 하지만 평소의 모습과 달랐어... 술에 취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오델로를 두자고 판을 가져온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삼촌은 슬픈 얼굴을 하고선 이제 오델로를 둘 수 없다고 하셨지. 앞으로는 너 혼자 공부해서 고수가 되어야 한다고, 고수가 되면 그때 삼촌이 두어주겠다고...”

“그게 내가 본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남자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머, 갑자기 왜 그런...”

깜짝 놀라 입에 손을 가져가는 지수를 흘끗 보던 남자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이유는 나도 몰랐지. 삼촌이 머나먼 곳으로 떠나면서 우리가족도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고, 그 뒤로 오델로는 나 혼자 틈틈이 실력을 키워나가는 정도였어. 그러다가 1년전쯤 이런 편지가 삼촌이 쓰던 물건들 속에서 발견 된거야...”

남자가 품에서 빛바랜 편지 한통을 꺼내보였다.

“그 당시 와타나베씨라고 삼촌과 친했던 일본인이 쓴 편지인거 같아. 내용은 당시 유학생이었던 우리 삼촌에게 많이 미안하다. 그러려던건 아니었는데 같은 일본인으로서 정말 미안하단 내용이야.”

“미안하다니 뭐가?”

민혁이 짧게 물었다.

“일본 대회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우승하는게 싫었던 일본인들이 우리 삼촌에게 누명을 씌워서 선수 자격을 박탈한거지. 그당시 지브라(컴퓨터 오델로 프로그램)가 처음 등장하면서 우리 삼촌이 그걸 몰래 사용해서 우승을 했다는 누명.”

“그리고 삼촌이 오델로 대회를 참가 안하면 다른 유학생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게끔 하겠다는 얘기도 있었던 모양이야. 삼촌은 다른 유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거지.”

“저런 나쁜 놈들! 지들만 우승을 해야한다는거야 뭐야!”

현서가 주먹을 불끈쥐며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래서 컴퓨터를 가지고 치팅하는 유저들을 그토록 혐오하는게로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고수들을 찾아헤맬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지수가 잠깐 물을 한컵 더 갖다주며 물었다.

“복수를 하고 싶었거든. 그 당시 삼촌에게 누명을 씌웠던 주동자가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를 반드시 내 손으로 꺾고 삼촌이 받아야 할 사과를 대신 받고 싶었지.”

“...하세가와..”

민혁이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아, 아냐... 계속 해보라고”

“하지만 아직 그 수준이 되려면 멀었어. 그래서 나보다 잘두는 사람을 찾아 그 사람에게 배우든 같이 연구를 하든 하지 않으면 복수는 꿈도 못꾸겠더군. 냉정하게 아직은 실력이 많이 모자라..”

“사실 스네이크 오프닝도 어렸을 때 우리 삼촌이 연구해서 내게 가르쳐 준 오프닝이다. 너희들이 얘기했던 것처럼 상대를 일부러 곤경에 빠뜨리는 난해한 오프닝이라거나 사악한 오프닝 이런게 아니야. 어렸을 때 나와 삼촌은 이 오프닝을 뱀장어라고 불렀지”

그의 말을 받아 민혁이 덧붙였다.

“그 말은 카이 말이 맞아. 중앙에서 변으로 가는 일반적인 오프닝 형태가 아니라 중앙싸움을 생략하고 바로 변으로 진출하게끔 유도하는 오프닝이라 급전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창의적이고 치열한 오프닝이지. 처음 접했을 때 이걸 만들어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적이 있었는데 당신 삼촌이었다니 재밌군.”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게 복수를 하게 해줄 스승이 생긴거 맞지...?”

카이가 민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에에? 아... 그게... 저..”

민혁이 말을 못하는 사이 카이가 지수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이 학원에는 내가 실례를 했으니 보상을 해드려야죠. 여기 원생 몇 명 수용 가능해요?”

“네? 2..20명? 마..많을수록 좋지만... 일단...”

“뭐지 저 아저씨 재벌인가. 뭔가 돈으로 해결할 기세...!”

현서가 중얼거리자 지수가 맞받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이 입고 있는 옷 다 명품인 것 같아.”

“어머, 자세히 보니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 것 같아. 지브라가 1997년경에 나왔으니 그때 유치원 생이면 이제 겨우 20대 중반. 호호호”

“뭐야 아까는 건달 같다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더니만.. 내가 볼땐 노안이구만. 하여튼 여자들이란..!”

웃으면서 얘기하는 지수를 보며 현서가 혀를 끌끌 찼다.


다음날.

“줄 서세요. 줄이요”

“여기 원생 등록 신청서 있고요... 써서 제출해주시면... 거기 어머님! 그쪽 아니고 이쪽으로 와주세요~”

소리치는 지수와 그 앞으로 가득한 원생과 학부형들을 보면서 민혁과 카이가 서있었다.

“이봐 근데... 어떻게 된거야?”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회사 직원 자녀 특별활동으로 이 학원를 추천했죠.”

“하..하... 너 재벌 2세냐?”

“2세는 아니고... 뭐 그런게 있어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사범님.”

“흐... 또 한명이 늘은건가...”

난처한 웃음을 웃고 있는 민혁을 보며 카이가 웃었다.

“크크크크....”

“흐음 어찌됐든 결과만 좋다면... 하하...”

민혁도 어쩔 수 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비가 갠 다음날의 화창한 오후, 시끌벅적한 학원 안에는 상담을 하는 지수와 또래 아이들에게 선배인양 오델로 설명을 해주는 현서, 그 뒤로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 두 남자가 해맑게 서있었다.

-독사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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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델로 소설가, 공인 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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