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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9/21/2015 1:33 in 오델로, 입단대회

볼짱의 입단대회 참가기 (1)

이번엔 입단대회다.

입문 4개월여만에 전국대회 나가고 6개월여만에 입단대회까지 나가게 된 볼짱.

이쯤 되고 보니 좀 주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둑도 그렇고 골프도 그렇고 공인된 (프로의) 자격을 주는 장에 참가한다는 자체가 우습게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어떤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증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수반된 실력가만이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볼짱이 과연 오델로 기사가 될 수 있을까.

그만한 실력이 아직은 아닌데, 싶기도 했지만 세계대회까지 나간다고 일을 벌려놓은 마당에 단이라도 인증을 받고 나가는게 모양새가 좋은 것도 사실이니 일단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대회장인 판교 화랑공원은 집에서 지하철로만 1시간 정도 걸리는 제법 먼 거리였다.

강력한 입단후보인 수님이 참가를 못하게 된 원인중 하나를 제공한 것이 대회장까지의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볼짱은 그 거리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지하철에서 제브라랑 씨름을 하면서 갔기 때문이다.

지하철 타고가는 1시간동안 그것좀 한다고 없던 실력이 생길리 만무하지만 그거라도 안하면 안될 것 같았다.

이건 뭐 시험시간 초치기 하는 학생도 아니고, 마지막 시험을 본게 수년전 토익시험인걸 감안하면 볼짱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초조하고 떨리는 마음이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비교하자면 지난 전국대회때 떨렸던 것은 오프대회 경험자체가 아예 없는 데서 오는 막연한 불안함이었다면 이번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면 어쩌나하는 우려에서 오는 불안함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이미 협회장님 이하 심판진(우리 톡방 사범님들-영구님,리치님,그린님)들이 와계셨고 다른 선수들도 제법 와있었다.

야외이고 자리도 협소했지만 게임페스티벌의 한쪽에서 오델로(리버시)를 홍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는게 일단 기뻤다.

왜냐고? 좋든 싫든 나도 이미 오델로계에 발을 들여놓은 오델로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상도 잠시 곧 1라운드 페어링이 시작됐다.

비교적 선수 면면을 잘 알고 있는 그린님이 전날 톡방에서 뽑은 4강후보는 재성님, 케익님, 오태영님 그리고 볼짱 이렇게 4명이었다.

그린님이야 원래 허튼 소리 잘 안하는 사람이니까 저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볼짱 입장에서는 솔직히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한판한판 최선을 다할뿐이라고 생각하고 1라운드 페어링을 받았는데,

맙소사 1라운드에서 케익님과 재성님이 만난 것이다!

지난 전국대회 1라운드에서 영구님과 수님이 만났던 일이 오버랩 되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 1라운드의 결과가 대회 전반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볼짱은? 볼짱은 솔직히 에라 모르겠다 한판 한판 이기기나 해보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 두사람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을텐데 다른 사람과의 대국에서 패점을 안으면 뭐 해보나마나한 결과가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볼짱의 1라운드 상대는 여학생. 전국대회때 두어보진 않았지만 그때 참가 선수중 한명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여학생이었다.

그러고보면 볼짱은 매대회 여학생들은 꼭 한번씩 만나는 것 같다. 이번 대회는 여학생은 한명밖에 없었는데도.

하지만 여학생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나. 무조건 이겨야 했다. 그것도 가급적 돌개수를 많이.

볼짱의 백번으로 시작된 그 대국은 중반 무렵 승부가 갈렸다.

흑에게서 계속 경직된 수들이 나왔다. 돌들이 무언가 활발하지 않고 굳어있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그 여학생이 나보다 긴장을 더 한 듯 했다.

결국 볼짱이 52:12로 승리. 일단은 50개가 넘는 돌개수로 승리를 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대국을 마치고 다음 라운드를 기다리고 있는데 리치님이 슬쩍 내게로 오더니 말을 한다.

“돌 잘못 뒤집힌거 있었던거 알아요?”

“으잉? 내가?”

“여학생쪽이 잘못 뒤집은적이 있었어요. 그것도 두 번.”

맙소사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니. 그게 승패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나로서는 매우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규정상 돌을 잘못 뒤집었더라도 당사자끼리 모르고 지나쳤다면 그냥 나온 결과 그대로 기록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잘못 뒤집은 사람이나 그걸 못보고 지나간 사람이나 정상의 컨디션은 아니라는 얘기가 가능하다.

전날 잠을 별로 못자서 그런가.

앞으로 남은 라운드에서 돌을 잘못 뒤집어 혹여 승자와 패자가 바뀌기라도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정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라운드 최대의 관심판이었던 재성님과 케익님의 결과는 재성님이 약간 유리하지 않나 했었는데 결국 케익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렇게 되면 케익님이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판에서도 돌을 잘못뒤집은게 나왔다고 했다.

모두들 긴장한 상태에서 임했기 때문일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2라운드 페어링을 기다렸다.


볼짱의 2라운드 상대는 에브리데이님.

수님의 빈자리를 대신해 신청한걸로 아는데, 오프에서는 처음 뵙는 복병인 분이었다.

이 지면을 빌어 고백하자면 볼짱은 종반에 접어들기 전까지 매우 고전을 했다. 이러다 지는건가 싶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초반부에 상대가 과감하게 씨스퀘어에 돌을 놓고 끼워넣기를 하자고 했을 때 선택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수는 아니었지만 설마 그렇게 둘까 하면서 잠깐 느슨했던 것이 막상 당하고 보니 매우 아픈 자리였던 것이다.

‘이걸 먹을까. 먹고 서로 귀를 양분해서 가져가야하나... 그러면 승산이 내게 있나...’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자신이 없었다.

여기서 귀를 차지하지 않으면 기세에 눌리게 된다. 하지만...

볼짱은 할 수 없이 방향을 틀어 새로운 곳을 두었다. 그 수가 좋은 수였는지 안좋은 수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기세에 눌린 기분만큼은 매우 좋지 않았다. 거의 승부에서 진 느낌이라고나할까.

한참을 두어나가다가 이러다 지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밀려올 때 다행히 엑스스퀘어에 들어가는 수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를 둠으로써 흑이 귀를 주고 패리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엑스스퀘어 한 수가 형세를 흑에게로 돌렸고 엔딩도 흑이 아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기세에 눌리고 시작한 대국이라 빨리 승부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엔딩은 빨리 뒀던 것 같다.

결과는 볼짱의 42:22(정확하진 않다) 승리.

이정도면 됐겠지 하고 스코어 종이에 사인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영구님이 옆에 오셔서 볼짱을 쏘아보셨다.

‘헉... 왜지? 뭐가 잘못됐나?’

“여기서 엔딩을 이리 가면 어쩌자는거야... 여기서 반대쪽으로 돌렸어야지... 으이구 미치겠다 정말. 왜그래요?”

하면서 돌을 대충 놓아보시는데 그리됐으면 거의 54:10정도의 수준으로 마치게 된단다.

승리를 서두르는 바람에 최선수의 쉬운 엔딩을 못찾아간 것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사실 영구님 말씀이 맞다. 돌개수가 순위를 가르는 일이 비일비재 한데 이런 곳에서 더 돌개수를 가져가지 못해서 그것 때문에 입단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억울한 일도 다시 없을 것이다. 반성해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라운드나 2라운드나 승리를 하긴 했지만 이래저래 찝찝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대국들이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어쩌겠누. 남은 라운드만 생각해야지.


1,2라운드 이후에는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3라운드부터가 진짜 승부다.

그 시점에서 2승그룹이 볼짱과 케익님을 포함해 총4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누구나 1패 정도는 당할 수 있다고 본다면 남은 3라운드에서 입단자가 갈릴 것이 분명했다.

수님이 카톡으로 방심하지 말고 잘 하라는 응원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감사히 생각하며 남은 라운드에서는 정신 차리고 잘해보자 다짐을 했다.

‘그래, 어차피 입단은 하늘이 돕는자가 된다더라. 최선을 다해보고 나머지는 운에 맡겨보자.’

볼짱은 볶음밥을 입으로 넣는지 코로 넣는지 모르게 빨리 흠입하고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긴장은 여전히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계속-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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