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All About Othello

ballzzang wrote this on 08/25/2015 02:03 in 오델로, 소설, X-square, 들장미 소녀

들장미 소녀 (3)

“이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카이가 핸들을 꺾으며 볼멘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오사범님을 지키고 있는거지. 요즘은 무서운 세상이라고.”

뒷자석에 앉은 현서가 머리를 앞으로 디밀고 카이의 귀에다 속삭였다.

“아 그니까! 네가 지켜주면 되지 왜 나까지 오사범을 미행해야 하는 거냐고!”

“난 차가 없잖아!”

“하하... 나도 이게 뭐가 뭔지...”

조수석에 멍하니 앉아있던 민혁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쵸? 유사범님도 이해 안가죠? 이 꼬마놈땜에 맨날 피곤하다니까...”

“자꾸 꼬마놈이라고 하지.. 어! 내렸다!”

카이의 차가 뒤를 쫓고 있는 차는 지수가 탄 시외버스였다. 정류장에 선 버스는 지수를 내려놓더니 쫓기는 범인처럼 급하게 떠나버렸다. 버스에서 내린 지수는 예의 장미다발을 손에 든 채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어떤 나쁜 놈이 이런 으슥한 곳으로 불러낸거야...!”

현서가 부르르 떨며 말을 했다.

“바보야 으슥한 곳은 이런 곳이 아니지 백주 대낮에 한적한 교외구먼 무슨... 근데 이런 애매한 곳에서 데이트를 하나...”

지수는 몇백미터를 걷더니 바람이 불듯 천천히 모퉁이를 돌았다.

“헉! 여... 여긴!”

그녀가 들어간 곳을 바라보던 세 사람은 동시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어린 지수는 앞집 남자와 거의 매일 수없는 오델로 대국을 치르며 점점 강해졌다. 로즈 오프닝으로 시작했을 경우 지수는 어느덧 남자와의 승률이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지수는 무엇보다 형태에 대한 감각이 남달리 뛰어났고 그런 영특한 모습이 남자로 하여금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주게 만들었다.

로즈 오프닝이 아닌 다른 오프닝도 조금씩 배워나갈 무렵의 어느날.

그날도 지수는 방과 후 머릿속에 새로 배운 오프닝을 그려가며 앞집 남자의 방문 앞에 다다랐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매일 이 시간쯤이면 문을 반쯤 열어놓고 지수를 맞이하곤 했던 남자의 방문이 굳게 닫혀져 있던 것이다.

작은 손을 들어 문을 콩콩 두드려보았다. 기척이 없었다. 다시 콩콩 두드려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어린 지수였지만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뒤돌아선 순간,

“꺄악!”

지수의 눈앞에는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아... 아빠...”

지수는 무언가 큰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지수의 아버지는 무언가 슬픈듯한 표정으로

“괜찮다... 넌 잘못이 없어. 겁낼 필요 없다.”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뭔지 모르게 무섭고 야속하고 슬픈 느낌이 들어 어린 지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지마라... 이리오렴. 아빠랑 같이 어디 좀 갈데가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지수는 아버지가 타라는 대로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안에서 아버지는 가라앉은 어조로 차분하게 말했다.

“박군은... 아빠의 고향 후배다. 참 심성이 곧고 바른 청년이었지. 우리동네로 이사온 것을 우연히 알게된 후 실은 내가 널 박군에게 부탁했었다.”

“...”

지수는 택시 안에서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는척하며 아버지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새엄마가 오고나서 어리지만 예민한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는 너한테 뭐라도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변변한 학원 하나 보낼 형편도 못됐고...”

“그런 차에 박군이 앞집에 우연히 이사를 온거지. 그 친구한테 아빠가 네 오델로 지도를 부탁했었어. 박군이 우리나라에서 오델로를 제일 잘 두거든.”

‘아저씨가 우리나라에서 오델로를 제일 잘 두는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 있지? 아빠는 날 어디로 데려가는거지?’

이윽고 택시는 어느 종합병원 앞에 도착했다.

지수가 아빠의 손을 잡고 따라들어간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아... 지금 면회 가능한가요...”

“네 환자분 의식이 없으셔서 정해진 시간에 아주 조용히 잠깐 상태만 보시고 나오실 수 있습니다.”

간호사의 대답을 들은 후 두 사람은 조용히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아저씨...! 우아앙...”

지수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죽은 듯 누워있는 남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지수 아버지는 어린 지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아저씨, 왜 여기 누워있는거에요. 일어나요. 나랑 오델로 둬야하잖아요... 앞으로 많은거 알려주신다고 했잖아요. 나... 아직도 배울게 많은데... 엉엉...”

지수가 울음을 삼켜가며 흐느끼자 의식이 없던 남자의 눈꺼풀이 잠깐 꿈틀했던 것도 같았다.


빈소는 약간의 유족들을 제외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젊은 청년의 빈소라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남자의 삶 자체가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살아온 삶이 아니어서였을 것이다.

어린 지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빈소의 한켠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지수의 옆 테이블에는 한무리의 조문객이 모여 있었다.

소주잔에 잔을 채운 남자들은 저마다 소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한마디씩 했다.

“아니 하늘도 무심하지지 말야. 저런 성실한 사람을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가는지 원.”

“공사장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다쳐서 그렇게 됐다고?”

“그렇다는구먼. 이번에 대입 시험 준비도 병행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모양이야.”

“쯧쯧... 그렇게나 성실한 사람을. 그 참, 아니 그러면 우리나라 오델로는 또 어떻게 되는거야. 저 친구가 나타나면서 이번에야말로 한국이 세계대회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며.”

“그러게 말야. 실력이 세계 탑랭커 수준이니 이번에야말로 세계대회 우승 한번 하나 했는데 말이지...”

“에구... 나이나 많았으면 제자라도 하나 키워놨을지 모르는데 이렇게 일찍 떠났으니 뭐... 제자가 있을 턱이 있나. 참 아쉽게 됐네...”

옆에서 남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지수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니에요! 아저씨 제자 있어요!”

처음보는 꼬마가 나타나서 갑자기 소리치자 남자들은 잠시 하던 얘기를 멈추고 아무말 없이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제자가 있다고? 그게 누구지?”

“저에요! 제가 제자에요!”

남자들은 저마다 피식 웃으며 귀엽다는 듯이 지수를 쳐다보다가 다시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지수는 작은 손을 불끈 쥐었다.

‘아저씨! 저도 이다음에 아저씨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오델로 선생님이 될래요. 그리고 꼭 세계대회 나가서 우승할게요! 하늘에서 절 꼭 응원해주세요...’


납골당에 장미를 놓아두고는 지수는 혼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오델로 선생님이 됐어요. 음... 아직 부족한게 많지만 아저씨가 얘기했던, 돌이 하나가 남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그렇게 헤쳐나가 볼게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구요...”

“참. 그리고... 아직 세계대회 우승은 못했지만 요즘 여러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조만간 한국이 세계대회 우승 할 수도 있을거 같아요. 그러면 참 좋겠다, 그죠?”

하늘에서 지수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그 순간 납골함에 씌여있던 故박재훈九단 이라는 이름이 반짝 빛났다.

민혁과 카이, 현서는 납골당에서 돌아나오는 지수를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멋! 모두들 여긴 어쩐 일이에요?”

“...”


“그런 일이 있었군...”

지수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난 후 카이가 말을 꺼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마는 우리는 모두 저마다 오델로에 얽힌 사연들을 가지고 모이게 된거군. 신기한데.”

카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혁도 입을 열었다.

“생각났어. 내가 어렸을 때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던 사람이 재훈님이었어. 오델로 모임에서 주변사람들이 두자는 것을 정중히 사양하더니 딱 한판만 두고 가겠다며 나를 지목했었지...”

“나야 누가 누군지 몰랐으니 기억이 안났지만 그당시 주변 사람들이 세계1위와 비공식대국에서 이긴적이 있는 사람과 두는거라고 얘기하는걸 들은것 같아...”

“그리고... 지수가 로즈를 틀어갈때의 그 수순들이 그 당시에 나왔었다는것도 근거가 되겠네.”

“그런 인연들이 있네요...”

지수가 내심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지수 옆에 앉아있던 현서는 멍하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캔음료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지수가 갑자기 현서쪽으로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그런데! 현서! 너 선생님이 뭐 남자를 만나서 뭐 어쩐다고? 네가 선생님 뒤를 밟자고 했다며?”

“네? 아아... 그게 저... 제가 조금 요즘 예민했나봐요... 선생님. 그게... 제가 왜 그랬을까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는 현서를 보며 지수는 까르르 웃고 말았다.

“그걸 네가 나한테 물어! 네가 알지 내가 알겠니!”

“아아! 잘못했어요!”

“후후후...”

현서의 당황하는 모습에 지수는 또한번 웃고 말았다.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들장미를 닮은 구름 하나가 하늘하늘 흘러가고 있었다.

-들장미 소녀 끝-

*이번 에피소드는 너무 이른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델로 고수 故유요섭 九단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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