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All About Othello

ballzzang wrote this on 09/16/2015 23:07 in 오델로, 소설, X-square, 망아지

망아지 (1)

어느덧 후끈한 바람은 자취를 감추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도시의 건물을 살짝살짝 간지르고 지나갔다.

오후의 가을햇살이 한빛오델로 학원의 창틈으로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현서는 양쪽 볼에 손을 모으고 심각한 표정으로 오델로 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카이가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오델로 돌을 손으로 탁탁 튕기며 오델로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오델로 두는 사람 어디갔나? 왜 이리 뜸을 들이고 있는거야 뻔한 곳에서.”

“아 좀 조용히 해보세요. 집중이 안되잖아요!”

현서는 얼굴에 댄 손을 꿈쩍도 않은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나를 이기려면 생각이라도 오래해야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질까? 크크”

“에잉.”

힘없이 나가는 현서의 돌이 씨스퀘어에 놓아졌다.

“오우. 이건 안돼. 패스 연타야 히히.”

낄낄대며 현서의 돌을 거의 다 뒤집은 카이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들의 대국을 뒷편에서 말없이 바라보던 지수는 민혁에게 말했다.

“현서말이에요... 재주는 있는것 같은데 실력이 어느 이상 늘지 않고 있는것 같아서 걱정이란 말이죠.."

대국을 함께 바라보던 민혁은 그러나 뜻밖의 대답을 했다.

“늘지 않고 있다고? 아니야. 현서는 분명히 늘고있어.”

“네? 늘고 있다고요? 하지만 늘 카이에게 힘한번 못쓰고 무너지고 있는데... 전국대회가 한달 앞인데 현서가 좌절할까 걱정이에요...”

민혁은 지수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과연 그럴까? 오사범은 현서를 너무 아이처럼 여기고 과소평가 하고 있는지도 몰라. 걱정하지 말라고.”

“잉? 그게 무슨 말이죠! 사범님이 몰래 현서를 개인지도라도 해주고 있는건가요? 제 허락 없이!”

“아... 아냐 그럴리가 있겠어. 하하... 다만 현서가 왜 뻔한 곳에서 장고를 하고 있는지 좀 이상하지 않아?”

“음...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솔하게 손이 빨리 나가서 문제였던 아이였는데...”

“뻔한 곳에서 생각이 길어졌다는 얘기는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과연 그럴까요...”

“두고보라고. 조만간 현서가 카이를 따라잡을테니.”

웃음을 띤 채로 두사람의 대국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는 민혁을 보며 지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날 밤, 볼일을 보고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닫힌 학원 문을 열던 지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야! 이게 뭐야!”

학원에는 현서가 오델로판 위에 엎드린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현서의 손에는 오델로 돌들이 아직 쥐어져 있는 상태였고 주변에는 유명선수들의 기보가 오델로돌들과 함께 흩어져 있었다.

“현서야! 너 집에 안들어갔..."

놀란 지수가 다가서자 현서는 입을 옹알거리며 잠꼬대를 했다.

“난... 아빠처럼 강해진다... 난 할 수 있다...”

지수는 그런 현서를 보며 잠깐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뭐지? 뭐가 이렇게 어린 아이를 이토록 간절하게 만들고 있는거지...?'

지수는 잠깐 현서를 내려보다가 흔들어서 깨우는것을 포기하고 현서를 한쪽 공간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현서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전화를 간단히 끝낸 후 지수는 곤히 잠들어있는 현서를 내려다보았다.

“아아... 이 아이 집에도 안들어가고 여기서 혼자 연구를 했나.”

어느새 민혁이 지수의 뒤에 다가와 있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이러다가 몸상하겠어요... 이 말썽쟁이 같으니.”

민혁은 침상 한켠에 걸터앉아 잠시 시선을 창밖에 고정시키고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은 말야, 그게 뭐든간에 하나에 미칠 때가 있어. 그때 다른 사람 눈에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기 쉽지.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수가 되는 분야는 없어.”

“...”

“오사범도 어린시절 박9단에게 오델로를 배울 때를 생각해봐. 그때 푹 빠져 있지 않았어?”

“하긴... 그때 반친구들이 이상한 애라고 절 멀리하긴 했었죠...”

“그것봐. 지금 현서도 그 단계일는지 몰라.”

“그럴까요...”

“으...응"

몸을 뒤척이던 현서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아... 아?! 여긴? 사범님!”

현서가 벌떡 일어나며 당황한채로 소리쳤다.

“뭐야. 너 집에도 안들어가고 어머니 걱정하시게 말야.”

“그... 그게...”

“자 일어나렴. 밤이 늦었으니 선생님이 집까지 데려다줄게.”

멋쩍게 일어난 현서는 슬그머니 문을 나서는 오사범 뒤를 따라나섰다.

“나도 같이 가지.”


현서와 지수, 민혁 세사람은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걸었다.

네온사인 틈속에 멀겋게 빛나는 초승달이 옷장속의 옷걸이처럼 반쯤 기울어진 채로 하늘에 걸려있었다.

선선한 가을 밤바람이 세사람의 머릿결을 휭하고 훑었다.

“어머, 여기가 언제 이렇게 변했지. 신기하다.”

지수가 가리킨 곳에는 이전에 없던 편의점 건물이 번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하여간 건물들도 빨리도 짓는다. 여기에 편의점이 생길거라곤... 전에 있던 커피숍은 어디로 간거야.”

지수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던 민혁이 말했다.

“원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 그 말은 정해진 것이란건 애초에 없다는 얘기도 돼.”

가만히 아무말도 않고 따라 걷던 현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오델로도 그런거야?”

“응? 뭐라고?”

지수가 되물었다.

“오델로도 그런거냐고. 제브라의 수치상 가장 높게 표시되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두고 있잖아요... 아닌가?”

“꼭 그렇진 않아...”

민혁이 심각하게 묻는 현서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사람끼리의 대국이라면 초중반까지는 네가 믿고 두는 곳이 제일 좋은 수라고 생각하고 둬. 그게 곧 너의 최선수야.”

씨익 웃으며 말하는 민혁의 얼굴을 현서는 한동안 쳐다보았다.


이윽고 다다른 현서의 집앞에서 세사람은 헤어졌다.

오던길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지수와 민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현서는 그러나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집앞을 지나 백여미터를 더 걸어가던 현서는 어느 건물 옥상에 있는 옥탑방 앞에 멈춰섰다.

좁고 컴컴한 방 깊숙한 곳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흐... 왔느냐 꼬마.”

현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꼭 쥔 채 그 앞에 꼿꼿이 서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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