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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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zzang wrote this on 06/27/2015 in 오델로, 소설, X-square, 서막

서막 (2)

그날 밤, 낮의 떠돌이 남자가 어느 중국집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계십니까? 아무도 없어요?”

비쩍 마른 왜소한 사내가 못참겠다는 듯 문을 열고 나왔다.

“뭐야! 누구야!”

“설마 이 시간에 짜장면 먹으러 왔겠나...후후...”

“뭐?”

“여기 윤봉구라는 사람 있지 않나요?”

말라깽이 사내가 고개를 잠시 외로 꼬더니 안에 대고 소리쳤다.

“형님! 여기 형님 찾아온 분이 있는데요?”

중국집 안에는 거구 남자와 노인을 비롯 몇사람이 모여 마작을 하고 있었다.

“뭐야? 누군데?”

거구의 남자가 고개를 빼고 떠돌이 남자쪽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있던 노인에게 말했다.

“허사장님. 저기.. 아까 낮에 마주쳤던 놈이 날 찾아왔다는데요. 혹시 아는 놈이었어요?”

“아니... 난 모르는 놈인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거지?”

떠돌이 남자는 성큼성큼 거구의 사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얼굴을 들이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낮에 상대방을 속이면서 대국을 했잖아. 맞지?”

“뭣?!”

떠돌이 남자는 거구의 남자가 입고 있는 양복 상의의 소맷단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 소매 속에다가 돌을 숨겨서 상대 돌을 뒤집을때마다 바꿔쳤잖아... 아닌가?”

“뭐..뭐라는 거야 이자식이!”

“허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못하는군!”

떠돌이 남자는 안되겠다는 듯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동영상을 플레이해 보였다.

“이거보라구. 내가 다 녹화를 해뒀거든”

동영상 속의 화면을 확대해서 저속재생을 해보니 과연 돌을 뒤집을때마다 남자의 소매속으로 흰돌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다.

“너...넌 뭐야! 뭐하는 놈인데 여기와서 행패야!”

이번에는 노인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64대0이다.”

“뭣?”

“64대0으로 이겨주마. 돌이 하나라도 남으면 너의 승리로 인정해주지. 어때?”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던 거구의 남자가 이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이제 알겠다. 너 뭐 오델로 기사냐? 아까 그 여선생이 고용이라도 했나? 학원 빼기 싫었대?”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지 않았으면 내기도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후후후... 너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내가 그 여선생에게 질 것 같아서 속임수를 쓴게 아냐. 만에 하나 생길 변수까지 없앤 것뿐이지. 내가 그리 만만해 보이나?”

“64대0이다. 내가 이기면 낮에 있었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자. 어때?”

이번에는 노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좋아... 봉구야 이길 수 있는거지?”

“허... 나 원. 사장님 지금 애들 장난 같은 말이에요. 돌 하나만 남아도 이기는거 이거는 이 자식이 미친 소리 하는거에요. 죽을라구 환장을 한거지.”

“할거야, 말거야?”

“오냐. 하자. 대신 내가 이기면 어쩔거냐?”

“네가 시키는 것은 다하도록 하지”

“미친놈아냐 이거. 좋다 그래”

그들은 게임을 하던 마작판을 치우고 오델로 판을 놓고 마주 앉았다.

상의를 벗어던진 거구의 남자는 흑돌을 쥐고 떠돌이 남자는 조용히 백돌을 집었다.

열수정도 두어졌을 무렵 갑자기 떠돌이 남자가 착수를 않고 오델로 판을 응시한다.

“흐흐흐... 왜 64대0으로 이긴다며? 막상 해보려니 안될거 같아? 왜 못 두고 있지? 넌 이제 죽었어.”

아무말 않던 남자가 다시 착수를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거구의 남자가 생각을 하면서 둬도 떠돌이 남자는 미리 준비가 됐다는 듯 노타임으로 두었다.

10여분 정도가 흘렀을까.

빈칸 2개가 남은 오델로 판에는 이미 백돌이 가득했다.

“이... 이건 말도 안돼!”

“이봐 이봐. 패스잖아 맞지? 내가 두 번 두면 되는건가.”

남은 2칸 마저 백돌이 놓여지자 모든 오델로 판에는 백돌 64개가 놓여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노인의 얼굴도 거구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사색이 되었다.

“너... 넌 누구냐!”

“나?”

떠돌이 남자는 다시 한번 그들 앞에 얼굴을 바짝 디밀었다.

“네가 낮에 내 이름을 떠들고 다니던데?”

“큭! 그럼 네가 유...민혁? 전설의 불패 기사 유민혁?”

“잘 아는구먼. 네가 그때 내 이름만 사칭 안했어도 난 그냥 그 건물을 나와서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모르지. 자업자득이라고 윤봉구.”

“젠장...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거지?”

“널 아주 오래전 오델로 대회에서 본적이 있다. 그 큰 덩치로 인해서 기억이 났는데 그때도 너는 상대 선수를 속이다가 퇴장을 당했었지 아마. 예나 지금이나 제버릇 개 못주는군.”

노인이 거구 남자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으이구 이 바보녀석, 뭐하는거야, 어서 가자 가.”

문밖으로 나가면서 두 사람은 떠돌이 남자를 노려보며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그렇게밖에 못 하냐 너는.”

“사장님. 저 놈은 컴퓨터보다 더한 귀신이에요. 사람이 아니라구요. 아까 그 몇 분 생각한게 끝판까지 수를 다 내다본거라구요”

“뭐?”

“말로만 듣던 오델로 고수 유민혁 9단이 실제로 존재했다니... 으으...”


다음날 아침, 여자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무렵, 건물주 노인이 쭈삣쭈삣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 여기 학원은 그냥 안빼줘도 될 것 같아. 영어학원은 다른데다 내지. 나 건물 많거든. 하하..”

“네?”

“그럼 그리 알고 난 갈게”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도망치는 노인을 여자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학원 문을 열고 슬며시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당신은! 어제 그 정수기...”

남자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나가다가 들렀습니다. 일이 잘 해결됐다는 얘길 듣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는 전해야할 것 같아서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잠시만요!”

남자가 걸어나가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유민혁9단 이시죠?”

남자가 잠깐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잡지에서 본 기억이 나요. 절대 고수분께서 무슨 일이 있어서 나그네처럼 떠도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저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아... 그건 저... 좀 어려운 일인데...”

남자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여자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세한 사연은 묻지 않을게요! 신분도 소문내지 않을게요! 다만 오델로가 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셨으면 해요!”

“...”

“부탁드립니다!”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는 여자를 쳐다보던 남자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무언가 결정한 듯 여자를 천천히 쳐다보았다.

“그럼 잠시 신세 좀 질까요?”

여자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오지수 초단이라고 합니다.”

반갑게 손을 내민 여자를 보며 남자도 손을 내밀었다.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은 봄이라고 할 수밖에 없던 어느날, 폭풍 같은 오델로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시작된다.

-서막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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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델로 소설가, 공인 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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